사진=김응민 기자
사진=김응민 기자

진정세를 맞이하던 코로나19 사태에 다시 불이 붙었다. 재점화의 진원지는 이태원 클럽이었다.

황금연휴 기간이었던 지난 1일에서 2일, 경기도 용인에 거주하는 A 씨는 이태원 소재 클럽 3곳을 방문했다. 이후 A 씨와 밀착 접촉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발생했고 불과 수일 만에 지역사회 감염사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13일을 기점으로 클럽 ‘방문력이 없는’ 감염자가 더 많아졌고 직장과 집, 노래방 같은 장소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해 우려했던 2차‧3차 감염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확진자 동선 공개와 관련된 ‘인권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A 씨가 방문한 3개의 클럽 중 한 곳이 성 소수자를 위한 클럽이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A 씨가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정부는 A 씨의 이동 경로를 공개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 A 씨가 방문한 클럽을 ‘게이클럽’으로 지칭하거나 A 씨를 ‘동성애 성향’이라고 표현하면서부터 인권침해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선동과 낙인찍기가 효과적인 방역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일부 언론사는 방역의 본질과 관계없는 정보로 혐오와 낙인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질병 관리를 위한 방역과 검진은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와 차별받지 않을 권리 보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방역과 인권 보장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의 자극적이고 편향적인 보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를 방역과 인권 간의 양자택일로 확장시키는 논리는 옳지 않다.

생명을 잃으면 ‘인권’도 사라진다. 인권에는 평등권과 사회권 등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포함돼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권리는 바로 ‘생명권’이다.

생명권이란 말 그대로 생명의 가치를 존중받을 권리를 의미한다. 모든 인간이 출생하는 그 순간부터 갖게 되는 권리로, 인간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생명을 전제로 할 때 성립하고 인정될 수 있다. 생명권이 모든 기본권의 전제가 되는 배경이다.

전염성 질병은 한 개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공중보건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다수가 위험에 빠진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값비싼 교훈을 얻었다. 초기대응 단계에서 확진자의 동선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보건당국은 메르스 발생 초기에 확진자가 다녀간 병원과 발생 지역 등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국민들의 과도한 불안이나 오해를 막으려는 것이 이유였다. 그 결과 186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무려 38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로 인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감염병예방법)’에 대한 개정 작업이 이뤄졌다. ‘주의’ 이상의 위기 경보 발령 시 감염병 환자의 이동 경로와 이동수단, 진료의료기관 및 접촉자 현황 등을 공개하는 것이 개정안의 주된 내용이었다.

이후 질병관리본부는 국회 발의와 의결을 통해 개정된 감염병예방법을 토대로 코로나19 사태에서 감염병 대응체계를 구축했다. 이후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대규모 감염 사태에도 불구하고 ‘K-방역’이라는 말까지 탄생할 정도로 성공적인 대응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성과는 지난 메르스 사태에서 38명의 ‘생명권’을 희생해가며 얻은 결과물이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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