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강건욱 교수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코로나19 백신 긴급사용 승인 소식이 들렸지만 전 세계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3차 대유행으로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다. 확진자 수는 약 7000만명, 사망자는 160만명에 달할 정도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초래한 비극이다.

비극의 그림자가 짙어진다고 넋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상, 우리는 비극을 넘어서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한 필승책을 마련해야 한다. 팜뉴스가 그동안 금융, 제약, AI 산업 등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아 송년 기획을 연속 보도한 까닭이다.

이번 송년 기획의 마지막 주인공은 ‘핵의학의 대가(大家)’인 강건욱 서울대 의대 교수다. 그는 국내 최고의 석학들이 모여 출간한 책 ‘포스트 코로나 대한민국’에서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분석하고, 코로나 이전을 성찰하면서 코로나 이후를 날카롭게 전망했다.

강건욱 교수가 의료 산업과 제약산업에 대한 학문적 깊이가 있는 주장으로 세간의 시선을 한몸에 받아온 까닭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의료기관과 제약사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본지는 그 해답을 듣기 위해 혜화동 인근의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강건욱 교수를 만났다.

≫ 20년 후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

서울대 의대 핵의학 교실은 국내 핵의학 분야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왔다. 故 이문호 교수와 故 고창순 명예교수, 이명철 명예교수 등 대한민국 핵의학계의 거목을 배출하고, PET(양전자단층촬영) 장비의 국내 최초 도입으로 지난 50년간 임상 핵의학 분야의 비약적 발전을 이뤄온 산실(産室)이다.

서울대 의대가 다가올 미래를 치밀하게 예측하고 즉시 행동에 나선 결과다. 강건욱 교수 역시 서울대 의대 핵의학 교실의 교수로 연구실 곳곳을 누비면서 활동 중이다. 그렇다면 강건욱 교수가 약 30년 전, 핵의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선택한 배경은 뭘까.

그는 “1989년 본과 3학년 때 의사 최초로 과학기술한림원 원장을 하신 이명철 교수님 강의를 들었는데 그분의 영향이 컸다”며 “알츠하이머나 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양전자단층촬영 장비를 국내로 들여올 것이라는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때는 양전자단층촬영 장비가 미국에만 있고 우리나라에는 없었다”며 “그 장비가 들어온다면 어떤 물질이든 방사성동위원소를 붙여 우리 몸에 집어 넣어주면 영상 촬영으로 질병 진단이 가능했다. 이명철 교수님께서 제게 그런 꿈을 심어주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건욱 교수는 “그 당시 20년 뒤 각광을 받을 전공과를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이명철 교수님의 미래를 보여주신 훌륭한 강의 덕분에 ‘내가 졸업하고 20년 후 가장 활동을 많이 하고 있을 때, 핵의학이 주목을 받겠구나’라는 마음으로 핵의학을 선택했는데 딱 적중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핵의학(核醫學)은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하여 보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우리 몸의 상태와 질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하는 전문 의학 분야다. 2000년대 이후 임상의학, 방사약학, 핵물리학 등 기초 학문을 총망라한 분야로 세포 또는 유전자 수준의 정보까지도 파악해 개인별 맞춤형 치료를 완성할 수 있는 첨단 의학으로 자리 잡았다.

떡잎이 달랐던 것일까. 강건욱 교수가 불과 20대 시절에 핵의학에 ‘미래’를 주목한 혜안을 지녔었다는 얘기다. 강건욱 교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정치 경제 등 다방면의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해왔다”며 “코끼리 다리에만 주목하면 안 되고 모든 부분을 만져보면 미래가 보이기 때문이다. 국가미래연구원과 21세기에너지연구회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이유”라고 전했다.

≫ 의료 분야, 이번 팬데믹 계기로 변화 필요성↑

올해 2월 코로나19 팬데믹 확산 이후 강건욱 교수의 시선은 일찌감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향했다. 그는 최근 집필한 “포스트 코로나 대한민국: 집단지성 27인의 성찰과 전망”이란 책에서 “코로나19는 이전의 메르스, 사스와 달리 노인을 제외하면 치사율이 낮고 특히 무증상 감염이 많아 확산속도가 매우 빠르다. 이로 인해 확산을 좀처럼 통제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항공 교통의 발달로 금세 전 세계로 퍼져 팬데믹이 됐다”며 “그러나, 1911년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전 세계로 확산돼 많은 사람을 죽였던 스페인 독감과 달리 지금은 유전자 검사가 발달하여 감염자를 구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서울대학교병원 핵의학과

강건욱 교수는 “또 사회적 거리두기로 감염경로를 차단하는 방법을 시행하고 있어 1~2년 안에 인류가 면역이 생기는 집단면역이 일어나지 않는다”며 “이는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이 없이는 향후 3~5년 이상 현재의 상태가 지속될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페인 독감과 달리, 현대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조기에 종식될 수 없다는 것. 강건욱 교수는 의료 분야가 지금과는 다른 시스템으로 변하지 않으면 붕괴될 수밖에 없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강건욱 교수가 인터뷰 당시 분명하고 단호한 어조로 의료산업의 현실을 지적한 까닭이다.

강 교수는 “환자들이 병원에 오는 것 자체가 힘들다”며 “검진이 확실하지 않으면 병원의 접근도가 떨어진다. 이전에는 열이 나면 가까운 개인 의원을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인지 감기인지 독감인지 증상만 가지고는 구별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가벼운 질환을 앓는 경우에도 대학병원에 왔는데 이제는 코로나가 걱정되고 여러 가지 불편하기 때문에 병원에 가지 않는다. 서울대-병원도 코로나 확산 이후 20% 정도 환자 수가 줄어들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동네 의원’들은 코로나19 대확산 이후 최악의 경영 위기를 겪고 있다. 국민의힘 전봉민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코로나19 전·후 건강보험 진료현황' 분석자료에 따르면, 올해 1~4월 국민 총의료비는 27조 8341억원으로 집계돼 작년 대비 0.9%(2611억원) 감소했다. 그중에서도 소아청소년과·이비인후과가 직격탄을 맞았다.

≫ 비대면 진료,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

강건욱 교수의 대안은 ‘비대면 진료’다. 그는 “대구 지역에서 코로나가 창궐했을 당시 서울로 올라오기 어려운 기존 환자를 원격으로 진료하고 처방했다”며 “별문제 없이 비대면 진료가 가능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는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신체를 진찰 방법은 시진(눈으로 관찰하여 정보를 얻는 진찰), 촉진(두들겨서 정보를 얻는 진찰 방법) 등 여러 가지가 있다”며 “학창시절에는 ‘환자를 만져봤냐’는 교수님의 질문을 많이 받았다. 만져보지 않으면 야단을 맞았다”고 설명했다.

강건욱 교수는 “그런데 지금은 CT 사진을 찍고 초음파 검사를 하면 만져보지 않아도 세밀한 부분까지 정확하게 볼 수 있다”며 “데이터 중심의 진료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단 스마트폰으로 목소리를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은 된다. 시진과 문진이 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의사를 직접 만나도 현재 대부분의 진료는 시진과 문진밖에 하지 않는다”며 “그 짧은 5분 동안에 ‘누워보세요. 만져보세요’ 하지 못한다. 심지어 요즘은 청진도 거의 하지 않는다. 엑스레이를 찍으면 전부 나오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강건욱 교수는 비대면 진료가 기술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비대면 진료에 필요한 데이터는 대량의 데이터가 아니다”며 “대부분의 외래 진료는 일반적인 PC나 스마트폰 수준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 데이터들은 보통 혈액 검사상 당이 높고 낮은 수치와 같은 것들이다”고 전했다.

강건욱 교수는 “대한의사협회가 반대하고 있지만 코로나19를 계기로 비대면 진료에 참여를 설득할 수 있다”며 “코로나19 장기화가 1년 이상 지속된다면 사실상 문을 닫는 의원들이 속출할 것이다. 코로나19가 아니면 비대면 진료로 개원가들이 타격을 바로 받을 수 있겠지만 오히려 지금은 무조건 반대를 하면 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통계’도 강건욱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민주당 강병원 의원실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비대면 진료인 전화상담이 허용된 올 2월 24일부터 8월 30일까지 6개월간 시행된 비대면 진료는 7,730개 의료기관에서 68만8,794건이었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전체 전화상담의 53%가 시행될 정도로 비대면 진료가 이어졌다. 

그렇다면 강건욱 교수는 제약산업이 맞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까.

≫ 전례없이 낮아진 규제 장벽, 새로운 ‘기회’ 될 것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의 가장 큰 핵심은 백신 또는 항체 치료제 개발 분야에서 레귤레이터(Regulator) 즉 규제 당국의 장벽이 전례 없이 낮아졌다는 것”이라며 “코로나19 치료제나 백신 임상 3상 조금만 해도 신속 승인해주고 심지어 그것을 돈을 주고 팔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강건욱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FDA, 국내 식약처 등 어느 나라의 규제 당국이든 전부 규제 완화를 해주고 있기 때문에 빅파마들이 ‘돈이 되겠네’ 하면서 뛰어들고 있는 형국이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미국 제약사 모더나는 지난 4월 코로나19 백신 후보 물질을 전 세계 최초로 내놓은 이후 임상시험에 곧바로 들어갔다. 백신 개발에 착수한 지 2~3개월 만에 임상시험을 하는 진기록을 세웠고 최근 FDA에 긴급사용 승인을 신청했다. 최소 5년에서 최대 10년 이상 걸리는 임상 기간을 불과 8개월 만에 마친 것.

세계 최초로 FDA 긴급사용 승인을 얻은 주인공인 화이자 백신도 다르지 않다. 화이자 백신 임상 프로토콜에 따르면, FDA는 화이자 측에 1상, 2상, 3상 시험 승인을 동시에 내줬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종식하기 위한 FDA의 과감한 결단은 결국 수개월 만에 항체 형성률 90%를 상회하는 백신이 세상에 나오게 만들었다.

강건욱 교수는 “예전에는 뭔가 약화 사고가 터지면 국민들이 원성을 토로하고 언론이 규제 당국을 성토하는 패턴이 반복됐다”며 “임상시험 중에 약이 맞지 않아 돌아가시는 분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갑자기 난리를 치고 사회적 이슈가 되면 규제 당국은 신약 임상 과정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여 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지만 지금은 허들을 많이 낮춰놓았다”며 “FDA 코로나19 백신 3상 임상시험 참여자 기준이 3만명인 이유다. 향후 100만명을 대상으로 백신이 뿌려졌을 때도 누군가 부작용으로 사망하면 이슈가 제기될 수 있겠지만 유럽, 남미 이런 곳은 기본적으로 병에 걸려서 죽는 사람이 코로나에 걸려서 죽는 사람보다 더욱 많기 때문에 그런 위험을 감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 피규어
사진. 피규어

그는 “일종의 레귤레이터들의 리밸런싱(Re-balancing)이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며 “코로나19으로 규제 당국이 장벽을 낮춘 이후 향후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면 ‘이렇게까지 규제할 필요가 없겠구나’라는 반성적 움직임도 일어날 것이다. 어느 정도 수준으로 규제 를 조절할지에 대한 기준이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강건욱 교수는 “이는 제약‧바이오 업계에 있어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며 “그동안 연구자들이 개발한 새로운 신약 후보 물질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런 것들이 규제 당국의 더욱 낮아진 규제를 넘어 임상시험 절차에 손쉽게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관련 신약이 아니라 다른 새로운 신약 후보들도 여기에 맞춰서 도전해 볼 수 있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약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를 마친 직후 강건욱 교수 연구실 한켠에 놓인 피규어가 눈에 들어왔다. 강건욱 교수 얼굴을 형상화한 작은 인형으로 하얀 셔츠 안에 슈퍼맨의 빨간색 트레이드 마크가 담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모양은 ‘희망’을 상징한다.

슈퍼맨은 1938년 대공황 시기 당시 희망을 주는 캐릭터로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희망은 미래의 다른 이름이다. 강건욱 교수가 인터뷰 내내 보여준 통찰력과 혜안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희망’이 읽혔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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