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여론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대학병원에 근무했던 간호사가 2012년 중환자실 근무 당시 자신을 괴롭혔던 선배가 최근 간호학과 교수로 임용됐다고 폭로한 것. 해당 교수가 간호사 근무 시절 언어적‧물리적 폭력을 일상적으로 자행했다는 내용이다. 

전염병 환자의 가래를 담은 통을 머리에 집어 던졌다는 대목에서 특히 여론은 공분했다. 글 게시 이후 분노 여론이 들불처럼 번졌고, 해당 교수에 대한 임용취소를 요청하는 국민 청원은 9일 오후 6시 30분 기준 3300여명의 시민들이 동의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팜뉴스 취재진은 해당 글을 작성한 최초 폭로자 A 씨를 직접 만났다. A 씨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충북대병원 중환자실 태움 사건’의 구체적 정황을 단독 보도한다.

최초 폭로자인 간호사 A씨가 그림을 그리면서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촬영=신용수 기자]
최초 폭로자인 간호사 A씨가 그림을 그리면서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촬영=신용수 기자]

A 씨는 현재 서울 모 병원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다. 그는 5일 대형 포털 사이트 인터넷 게시판에 “9년 전 저를 태운 당시 7년차 간호사가 간호학과 교수님이 되셨대요. (간호사 태움 글)”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주인공이다. 

팜뉴스 취재진이 8일 오후 3시경 A 씨를 만났을 당시 “인터넷에 올렸던 글 내용은 전부 교수로 임용된 B 간호사 한 사람으로부터 겪었던 일”이라면서 “9년 전 일이라서 날짜를 정확히 기억 못하지만 B 간호사가 가래통을 뿌린 것을 포함해 지금까지 썼던 글과 앞으로 말할 모든 이야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A 씨는 게시글 속에서 지칭한 ‘선배 간호사’가 누군지 전했다. A 씨 증언에 의하면 B 간호사는 ‘나나’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선배로 최근 한림성심대 간호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B 간호사는 한림성심대 간호학과 홈페이지에는 등록된 상태는 아니지만, 홈페이지 내 강의자료실을 통해 그가 올해(2021년) 1학기 2학년 건강사정 과목을 맡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해자 A씨가 취재진에게 보여준 간호사면허증과 경력증명서. [촬영=신용수 기자]
피해자 A씨가 취재진에게 보여준 간호사면허증과 경력증명서. [촬영=신용수 기자]

A 씨의 기억에 따르면 ‘가래통 사건’은 2012년경 충북대병원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당시 중환자실에 근무 중이던 A씨는 VRE(반코마이신 내성 장알균) 감염증을 앓고 있어 스스로 가래를 뱉어내지 못한 환자의 가래를 흡인했다. 

A 씨는 “당시 중환자실에 응급환자가 몰려 인공호흡기가 부족한 상황이었다”며 “상대적으로 응급도가 덜한 VRE 환자에게는 창고에 있던 구형 인공호흡기를 부착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당시 신규 간호사라서 처음 접하는 구형 기기에 대한 조작이 미숙했고 평소보다 환자를 살피는 속도가 느렸다. 특히 VRE 환자의 경우 법정 전염병이라 병상이 따로 떨어져 있는 데다가 추가 보호복을 입고 환자를 돌봐야 해 속도를 내기가 더욱 어려웠다”고 말했다.

A 씨는 “게다가 VRE 환자 목에 끓는 가래의 점도가 매우 높아, 흡인기로 흡인도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흡인이 원활히 이뤄지려면, 흡인 중간중간에 생리식염수를 함께 흡인해줘야 한다. 그러다 보면 통이 금세 찬다. 보통의 경우라면 흡인 이후 바로 버려야 한다. 하지만 당시다른 환자 체크도 밀린 상황이라서 바로 버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문제의 상황은 바로 직후에 벌어졌다는 것이 A 씨 주장이다. A 씨에 의하면 보호복을 벗고 다른 환자를 돌보던 중, VRE 환자의 목에서 다시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A 씨는 “그때 상당히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며 “그런데 주변 병상을 담당 중이던 B 간호사가 제가 벗어둔 보호복을 입고 환자의 가래를 흡인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A 씨는 이어 “흡인이 끝난 뒤 B 간호사는 환자를 제때 돌보지 못했다는 점과 가래를 제때 버리지 못한 점을 들면서 내게 폭언을 날렸다”며 “이후 그는 가래통을 집어 들고 내 머리에 뿌렸다.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물 뿌리기 장면처럼, 가래가 내 머리와 얼굴을 뒤덮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 키는 174cm로 여자 중에서는 매우 큰 편에 속한다”며 “물론 B 간호사도 160cm대 후반으로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차이가 난다. 실수로 머리에 뿌릴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이후 B 간호사는 어서 씻고 오라고 내게 명령했고, 나는 화장실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만약 해당 사건이 실제로 벌어졌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B 간호사가 A 씨에게 뿌린 가래가 법정 전염병 환자의 분비물인 까닭이다. 

질병관리청이 정한 법정 감염병 분류체계에 따르면 VRE는 제4급 감염병에 해당한다. 게다가 당시 보호복은 B 간호사가 입고 있었던 상황. A 씨는 보호복도 입지 못한 채 B 간호사가 뿌린 가래를 맨몸으로 맞아야 했다. 최악의 경우 항생제 내성균에 감염될 수도 있었던 것.

A씨는 “글에 나온 내용들은 빙산의 일각 수준”이라면서 “가래통 사건 외에도 정말 다양한 종류의 물리적‧정신적 폭력을 겪었다. 결국 B 간호사의 ‘태움’ 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2013년 6월 병동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피해자 A씨가 직접 그린 가래통 투척 당시 상황을 나타낸 모식도. [촬영=신용수 기자]
피해자 A씨가 직접 그린 가래통 투척 당시 상황을 나타낸 모식도. [촬영=신용수 기자]

물론 한 사람의 주장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팜뉴스가 취재에 돌입한 이후, 당시 충북대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했던 간호사들의 B 간호사에 대한 추가 제보가 이어졌다. 이들 역시 B 간호사는 당시 A 씨 외 다른 후배와 환자들에게까지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다고 전했다. 

당시 해당 병동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C씨는 “B 간호사가 여러 간호사에게 소리 지르고 폭언하고 등짝을 때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A 씨가 글에서 언급했던 동료 간호사와 함께 다른 간호사들에 대한 폭언과 폭행을 자행했다. 심지어 동료뿐만 아니라 환자에게까지 난폭하게 굴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동료 간호사 D 씨도 “B 간호사가 안 보이는 사각지대에서 후배들을 발로 차거나, 옷으로 가려진 부분을 꼬집어 피멍을 들게 하는 일 등이 숱하게 일어났다”며 “그는 환자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우리를 괴롭혔지만, 정작 자신은 환자에게도 폭언을 일삼았다. 의식 없는 환자들을 돌보면서 혼잣말로 하는 폭언들을 들을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고 말했다. 

A씨는 충북대병원 퇴사 이후에도 B 간호사의 ‘태움’ 후유증이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혔다고 호소했다. 

A씨는 “원래 성격은 말도 많고, 활달해서 과 대표를 맡기도 했다”며 “하지만 충북대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면서 나는 감정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가래통 사건 이외에 온갖 수모를 당해서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살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퇴사 이후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왜 저 간호사는 늘 표정이 없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또 책을 잡히지 않기 위해 정해진 말만 하고 살게 되면서, 문장 완성을 잘하지 못하게 됐다. 내가 말하는 게 마치 외국인이 한국어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후유증들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 거의 3년이 걸렸다”고 덧붙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A씨는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글을 작성한 이후, B 간호사로부터 ‘전언’을 들었다고 밝혔다. 

A씨는 “나보다 늦게 퇴사한 동기가 있다. 그나마 나와 친했는데, 그 동기를 통해 현재 B 간호사가 개인사로 인해 매우 힘든 상황이니 글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다”며 “나중에 다른 동기를 통해 들으니, B 간호사를 비롯해 당시 태움을 주도했던 이들이 그 동기에게 ‘A와 친했으니 회유에 나서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또 “8일엔 지인을 통해 B 간호사가 다른 매체에서 내가 쓴 글이 사실무근이고,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걸 알게 됐다”며 “또 다른 지인은 B 간호사가 오늘 수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했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내가 바란 건 진정성 있는 사과, 딱 하나였는데 이젠 그마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내가 팜뉴스와의 인터뷰에 응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피해자 A씨의 근무 당시 사진(왼쪽)과 피해자 D씨의 학회 참석 당시 사진(오른쪽). [제공=피해자 A씨, D씨]
A씨의 근무 당시 사진(왼쪽)과 또 다른 제보자 D씨의 학회 참석 당시 사진(오른쪽). [제공=A씨, D씨]

A씨를 비롯한 제보자들이 원하는 것은 진심 어린 사과다. B 간호사가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일에 대한 사과를 계기로 간호계에 여전히 만연한 태움 악습을 근절하는 것이다.

A 씨는 “바라는 건 딱 한 가지다. 진정성 어린 사과”라며 “물론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몸이 떨린다. 하지만 그 사람도 앞으로 계속 일을 하려면 이 문제를 잘 마무리해야 할 것 아닌가. 나를 비롯한 자신이 괴롭혔던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길 바란다. 현재를 모면하기 위해 그저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C 씨 역시 “글을 쓴 당사자가 사과를 받고 조금이라도 편안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용기를 냈다”며 “내 제보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D 씨도 “B 간호사가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현실에 화가 난다”며 “이번 제보가 앞으로 간호계 태움 악습뿐만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학교폭력 등 부조리를 근절하는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팜뉴스 측은 8일과 9일 이틀에 걸쳐 A 씨와 다른 간호사들이 제기한 ‘충북대병원 태움 사건’ 관련 입장을 듣기 위해 B 간호사를 교수직으로 임용한 한림성심대 홍보팀 및 간호학과 등을 통해 B 교수에 수차례 연락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한림성심대 홍보팀은 “현재 해당 사건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우리 학교에 부임하기 전 일이라 현재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대로 최대한 빠르게 조치할 예정이다. 언론에도 이른 시일 내에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한림성심대 간호학과 측 관계자는 “B 간호사가 수업을 정상적으로 진행 중인 것은 사실이지만, 연락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질문한 내용을 B 간호사에게 전달했지만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팜뉴스 측은 B 간호사와 연락이 닿는대로 그의 입장을 후속 보도할 예정이다.

충북대병원 측은 태움 사건에 대해 진상 파악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충북대병원 대외 협력팀 관계자는 ”현재 B 간호사는 우리 병원에서 근무 중인 상황은 아니다. 다만, 또 다른 태움이 있었는지는 우선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며 ”그동안 우리 병원은 태움 등 악습을 근절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해왔다. 앞으로 발생하는 태움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 독자 의견에 따라 기존 ‘태움 문화’ 표현을 ’태움 악습’으로 수정했습니다. 독자 의견를 늘 귀담아듣는 팜뉴스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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