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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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휴가 때면 제주도의 한라산 둘레길이나 올레길 걷기를 좋아한다. 제주의 푸른 하늘 아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름다운 산과 바다의 풍광을 보면서 걷는 것은 모든 시름을 잊게 해준다. 

제주 올레의 환상적인 길들 중에서도 제6코스를 걷다 보면, 서귀포 시 동쪽으로 가는 길에서 유명한 정방폭포를 만나게 된다. 산으로부터 내려온 긴 폭포수 줄기가 곧바로 바다에 떨어지는 그 수려한 경관을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그런데 정방폭포로 내려가는 길 바로 옆에 ‘서복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 진나라의 진시황제(秦始皇帝, 기원전 259-210)가 보낸 사절인 서복(徐福) 혹은 서불(徐市)이란 인물이 동남동녀 500쌍을 거느리고 제주도 한라산에까지 장생불로초(長生不老草)를 구하러 왔을 때 정방폭포에도 들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까닭에 그곳에 기념관이 세워진 것이다. 

실제로, 폭포 절벽에는 서복(서불)이 그곳을 지나갔다는 것을 뜻하는 ‘서불과지(徐巿過之)’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서귀포(西歸浦)라는 지명 역시 그가 서쪽(중국)으로 돌아간 포구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필자는 몇 년 전 올레 6코스를 걷다가 그곳을 들렀다 지나가면서 많은 상념에 잠기게 되었다.

진시황제의 삶과 죽음은 우리에게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는 중국 대륙의 천하를 통일한 후 이 세상에서 아쉬울 것 없이 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실컷 누렸으나 딱 한 가지 획득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죽음을 피해 영원히 사는 비법(秘法)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되자 이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엄습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신하 서복(서불)을 두루 멀리까지 보내어 이른바 장생불로초를 찾아다니게끔 하였지만, 끝내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뭐가 그리 두려웠는지, 아니면 죽음 이후의 세상 역시 지배하고 싶었는지, 수많은 토우(土偶) 병사들을 만들어서 자신의 무덤을 지키게 하였던 진시황제는 아마도 역사상 죽음의 문제에 대해 가장 집착했던 인물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렇듯 중국 황제들의 불사불멸성(不死不滅性)에 대한 추구가 도를 넘어서, 연금술사들이 황제들을 위해 중금속 성분이 섞인 단약(丹藥)을 만드는 그릇된 처방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글자 그대로의 극약 처방은 이른바 ‘독으로 독을 다스린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단약을 복용한 황제들이 피를 토하며 죽어갔으니, 이러한 어리석음이야말로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손도 써볼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은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의 한계 체험을 하게 된다.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인생의 중대한 고비에서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서 고민하게 되고, 때로는 깊이 낙담해 좌절하기도 한다. 

시험에서의 낙방, 사업의 실패, 건강의 악화, 암으로 인해 시한부 삶을 선고 받음, 인간관계에서의 상처와 배신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 그리고 가족과의 사별(死別) 등 어찌해볼 수 없는 시련의 상황 속에서 슬픔과 아픔을 겪으며 깊은 상실감에 젖어 방황하게 된다. 오죽하면 불가(佛家)에서는 속세의 삶을 ‘고해’(苦海), 즉 고통의 바다라고 부르겠는가?

어쩌면 우리 인생은 풍랑이 이는 광대한 바다에서 한 작은 조각배에 몸을 싣고서 물결치는 대로 아슬아슬하게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살이인지도 모른다. 폭풍우가 다가오면 강한 바람과 높이 솟은 파도에 두려워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온통 물에 젖은 상태로 안간힘을 다해 노를 저어가는 그런 고통스러운 여정이 바로 우리네 인생살이라는 비유에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이다. 

우리를 찾아오는 이러한 고통과 한계의 체험을 통해서 우리 스스로 미소하고 유한(有限)한 인간임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는지도 모른다. 즉, 인간은 한계 상황에 부딪칠 때 자신의 실존적 운명에 대하여 매우 깊이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가장 크고 최종적인 한계 체험은 바로 죽음의 문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죽음은 모든 것을 무화(無化)시키는 파괴적이고 어두운 힘을 지닌다. 

창조의 역동성과는 정반대로, 죽음은 이미 존재하던 것을 다시금 존재하지 않게 혼돈(chaos)의 상태로 환원시키는 거대한 힘이며 어두운 그림자로서 다가온다. 

죽음은 삶의 모든 성취를 무의미하게 단절시켜버리는 공포 그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을 파괴하고 무화시키는 죽음은 인간의 온갖 꿈과 의욕을 빼앗아간다. 제 아무리 이 세상에서 많은 재물을 모으고 높은 자리에서 막대한 권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혹은 아무리 대단한 지식을 쌓고 세간(世間)의 큰 존경을 받는다 하더라도, 나아가 아무리 건강한 체력을 과시한다 해도, 결국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 어느 것도 죽음 이후의 세상으로 가져갈 수는 없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야말로 누구나 완전히 평등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진시황제의 삶과 죽음이 이러한 사실을 잘 증명한다. 그가 추구했던 불사불멸성(immortality)에 대한 추구는 참으로 헛된 꿈이었던 것이다. 인간의 피할 수 없는 가장 큰 운명이 바로 필멸성(必滅性)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는 불사불멸성에 대한 새로운 차원에서의 접근과 해석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불사불멸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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