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원 약사
(대한약사회 명예회장)

제2회 약업대상 수상자 한석원 대한약사회 명예회장

 

 [팜뉴스=김민건 기자] 지난 4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제2회 대한민국 약업대상' 약사(藥事) 부문 수상 영예는 한석원 대한약사회 명예회장에게 돌아갔다. 약사회 마지막 간선제 회장인 그는 의약분업 초석을 다진 인물로 유명하다. 이날 행사는 의약분업 21년째 되는 해였다.

한석원 명예회장은 지난 2001년 제32대 대한약사회 회장으로 뽑히며 3년간 의약분업 정착에 노력했다. 총회의장도 지냈다. 약의 날 행사가 그의 손에서 부활했고 보건의료전문인시험제도 개선, 국제학술대회 개최 등 굵직한 사안을 다뤘다. 특히, 약대6년제 추진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교육부를 설득한 끝에 시발점을 만들기도 했다.

약업계가 조금이라도 더 발전하는데 자신의 힘을 쏟았던 그는 이날 수상으로 국민보건 증진에 노력해왔던 공로를 인정받은 셈이다.

그는 지난 35년 간 한 명의 약사로서도 살아왔다. 국민에게 다가서는 약사상을 구현했다는 평가도 따른다. 불우이웃 무료 투약, 약물 오·남용 예방, 심장병 어린이 돕기 운동, 봉사약국 운영, 마약류 퇴치운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이 그의 이력을 말해준다.

4일 약사회 출입 기자단은 약업대상 시상식에서 한 명예회장을 만나 지난날 약사와 약사회장으로 봉사해 온 인생길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왼쪽부터)원희목 제약바이오협회장, 김대업 약사회장, 한석원 명예회장, 조선혜 유통협회장이 약업대상 시상식에서 기념사진 촬영 중이다.

▶약업대상 수여로 그간 공로를 인정받았다. 소감이 궁금하다.

"김대업 회장이 약업대상을 제정한 것은 내가 회장일 때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항상 상을 수여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에 처음 상을 타서 그런지 익숙하지 않다. 또, 나보다 약사회에서 헌신하고 노력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다. 다른 분들이 상을 받았어야 하는데 먼저 받았다. 그분들께 죄송스럽기도 하면서 영광이기도 하다. 

앞으로 약사회 발전을 위하고, 약사직능 권익이 커지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며 살아가겠다. 우리 약사사회에 동문간 파벌이 있다지만 약사직능에서는 누가 약사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나를 봐야지 학벌은 중요하지 않다."

▶약사회 회무를 오래 맡으면서 약국도 하셨다. 많은 일이 있었을텐데 후회하는 것들은 없나.

"(후회는)내가 왜 약사회에 발을 들였을까하는 점이다.(웃음) 약사회 일을 시작하면 약국을 소홀히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 서대문구 분회 부회장일 때 분회장 일정이 있으면 약국을 닫고 움직였다. 약국 문을 닫을 정도로 열정적인 사람은 사업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나랑 비슷한 시기에 약국한 사람을 보면 다들 돈을 많이 벌었다. 약국 열심히 해서 빌딩도 좀 세우고 여유있게 살았을텐데(웃음...) 하여간 집사람이 고생을 많이 했다.

자랑스러운 점은 약사사회에 나오면 누구보다 큰소리칠 수 있게 떳떳했다는 점이다. 부끄러운 점이 별로 없었다. 약사회장 할 때도 돈과 관계없이 떳떳한 회무를 했다는 점에서 자신한다."

▶사람들 기억에는 대한약사회장 이미지가 강하다. 의약분업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평가한다면?

"약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지 41년 정도 됐다. 1981년 서대문약사회에서 처음 시작했다. 당시 약사회 분회 사상 3대 연임을 한 것은 서대문 분회가 처음이었다. 그때부터 한 번도 약사회 임원 자리를 놓지 않고 중앙회까지 왔다. 

분회장을 하고 난 뒤에 서울시 부회장으로 갔고 1995년에 한약 파동이 일어났다. 당시 서울시약 정병태 회장과 약사회장이 직을 내려놔야 했다. 그래서 내가 임시회장으로 잔여 임기 1년을 했고 1996년부터 3년간 시약사회장을 맡았다.

우리 약사 역사를 나누면 2000년도 이전은 투쟁의 역사였다. 한약 파동 당시 상황을 보면 약사직능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리고 2000년에 의약분업이 시작하면서 김희중 회장과 내가 당해 7월부터 부회장을 맡으며 의약분업 기틀을 함께 놓았고 혼란의 시기를 지나갈 수 있었다.

2001년 1월에는 약사회장에 당선됐지만 전국 지부장들과 함께 하는 의약분업 투쟁의 연속이었다. 주사제가 약국에 남는지 의원에 가는지가 이슈였기에 회장이 되는 날부터 농성과 데모를 했다. 

2001년 5월에 김원기 복지부 장관이 등장하면서 역사적인 상황이 됐다. 의약분업 존립이냐 실패냐의 기로였다. 이태복 청와대  복지수석이 후에 복지부 장관을 하기도 했는데 이들이 3세 이하 65세 이상은 의약분업에서 제외하는 것을 발표하려고 했다. 이때 복지부로 약사회 임원들이 찾아가고 부회장들은 청와대에서 투쟁을 시작했다. 김원기 장관이 의약분업 개정안을 막았다. 이 순간이 회원 직능을 지킬 수 있었던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억에 남는다.

의약분업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찬반이 많이 엇갈렸지만 지금와서는 약사사회를 위해선 매우 잘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약사직능이 그만큼 올라섰다고 본다. 아주 성공적이지 않아도 (부족한 부분은)앞으로 개선하면 된다. 회원들이 불평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약사직능은 체계적인 의약관계, 국민과 신뢰관계를 통해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분업이라는 제도를 잘 보완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어려워하는 회원들에게 희망메시지를 전해달라.

"코로나 때문에 많이들 어려워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면 좋은 시절이 오지 않을까 싶다. 열심히 직능수호에 함께 했으면 한다. 약사회 회원들 덕분에 약업대상을 탈 수 있어서 감사하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