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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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뉴스=신용수 기자] 최근 코로나19 백신 예약 취소분을 다른 사람에게 배정하는 이른바 ‘노쇼 백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일선 의료기관들은 노쇼 백신이 지옥문을 열어젖혔다고 하소연했다. 높은 관심도에 비해 공급을 위한 준비가 미비해, 일선 의료기관에 과부하가 걸렸다는 것. 게다가 노쇼 백신을 예약했다가 취소된 사례를 비롯해 노쇼 백신 접종 뒤 후유증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시민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는 노쇼 백신 사태는 정부가 접종률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면서 빚어진 촌극이라면서, 지금이라도 백신 접종 대상을 원칙대로 고령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편 정부는 노쇼 백신 물량을 줄이기 위해 고령층 접종 연령의 문턱을 65세에서 60세로 낮추고, 노쇼 백신을 예약할 수 있는 앱을 제작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노쇼(예약 후 불참, No-show) 백신은 말 그대로 접종 예약을 한 접종자가 당일 백신 접종에 불참해 남은 접종 분량을 의미한다.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경우 개봉 후 6시간 이내 접종해야 하는 까닭에, 이들 접종분은 당일 접종자를 찾지 못하면 그대로 버려진다. 정부는 이에 접종 현장에서 해당 접종분을 희망자에게 배정하는 예비명단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노쇼 백신은 특히 2가지 측면에서 관심을 받았다. 먼저 현재 접종 대상자인 65세 이상 고령층이나 사회 필수 인력이 아니라도, 접종을 희망하는 누구나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다른 이유는 백신 접종을 2차까지 완료 시 코로나19 환자와 밀접 접촉하거나, 심지어 해외여행을 다녀와도 자가격리가 면제된다는 점이다. 이에 신혼여행이나 여름휴가 등 해외여행을 희망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노쇼 백신에 대한 수요가 형성됐다.

문제는 노쇼 백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접종을 맡은 일선 의료기관에 과부하가 걸렸다는 사실이다. 특히 예비명단 등록이 별다른 예약 시스템 없이 접종기관에 의존한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됐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 중인 노쇼 백신 접종자는 “노쇼 백신 접종 당일 병원에서 끊임없이 전화가 울렸다”며 “대부분 노쇼 백신에 대한 문의였다. 간호사들이 전화를 받느라 힘들어했다.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야 하는 데다, 이로 인한 피로감으로 정작 집중해야 할 접종 업무와 진료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고 말했다.

현재 노쇼 백신 접종 예비명단을 등록하려면 별다른 예약 시스템 없이 접종기관에 직접 전화로 문의하는 방법뿐이다. 질병관리청이 운영하는 ‘코로나19 예방접종 사전예약 시스템’ 홈페이지 내 ‘의료기관 찾기’를 통해 지역 내 접종기관을 조회할 수 있는데, 현재로서는 이들 접종기관들에 일일이 전화해 예약명단 등록을 문의하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접종 희망자와 의료현장 모두 노쇼 백신 예약명단 등록으로 인한 피로감을 호소했다. 시민들은 예약명단 등록 자체가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서울 노원구의 한 시민은 “접종을 받기 위해 거주지역 소재 백신 접종 의료기관에 전화를 수도 없이 돌렸다”며 “하지만 대부분 노쇼 백신을 받지 않고 있었다. 인원이 이미 꽉 찼다는 이유를 들거나, 아니면 예약접종을 더는 운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팜뉴스 조사 결과 해당 시민의 말대로 서울 내 접종기관 상당수가 더 이상 백신 예비명단을 받지 않고 있었다.

의료기관도 할말은 있었다. 서울 노원구에 있는 한 백신 접종기관 관계자는 “백신 접종 예비명단이 알려진 뒤 하루에도 수십 통씩 전화가 오고 있다”며 “노쇼 백신 특성상 예약자가 불참한 상황에서만 백신 접종이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이미 수십 명씩 대기명단이 쌓인 상황에서 대기명단을 더 받아도 접종해드리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전화를 받지 않을 수도 없어, 계속 같은 설명만 반복해드리고 있다. 다른 업무는 사실상 마비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접종기관마다 노쇼 백신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실제로 이로 인해 백신 접종을 예약했다가 취소한 사례도 있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시민은 “회사 근처에 있는 병원에 노쇼 백신을 문의했다”며 “병원에서는 6일에 노쇼가 있다면서 백신 접종을 예약해줬고, 예약 관련 메시지도 받았다. 그런데 다음날 병원에서 전화를 통해 백신 예약이 잘못됐다면서 백신 예약을 취소해야 한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마포구 소재 해당 병원은 “백신 예약을 취소한 사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노쇼 백신은 원칙적으로 취소분이 발생하는 당일 예약만 가능하다. 접수 당시 해당 시민을 사회필수인력 등 접종 대상자로 분류해 접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접종 현장에서도 현재 노쇼 백신으로 인해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예약자분께 이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드리고 사과의 말씀을 전했다”고 해명했다. 

접종을 받아도 문제였다. 접종 이후 후유증으로 응급실에 실려간 사례도 있었던 까닭이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30대 시민은 “서울 양천구에 거주 중인 친구가 남편과 노쇼 백신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한 다음 날 고열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며 “친구 내외 모두 견디다 못해 응급실에 실려 갔다. 한 명만 그런 것도 아니고 부부가 둘다 실려갔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후유증으로 말이 많은데 더욱 불안해졌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노쇼 백신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 대해 정부의 실책이 불러일으킨 촌극으로 평가했다. 정부가 접종률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면서 빚어진 자업자득이라는 것.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노쇼 백신의 경우 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많은데, 질병청 보고와 해외 논문들에 따르면, 화이자 백신보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부작용 발생비율이 3배가량 높다”며 “게다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50세 이상 고령층보다 연령대가 낮은 사람들에 대한 부작용이 더 심한 편이다. 개인차는 있지만 젊은 사람들 중 백신 접종 후 2~3일 끙끙 앓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또 “노쇼 백신 사태는 결국 정부가 자초한 일”이라며 “노쇼 백신이 왜 나오겠는가. 백신에 대한 불신이 만든 것이다. 애초 계획대로 고령층에 집중했다면 백신 노쇼 사태가 지금처럼 심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수치상 접종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수인력에 대한 접종을 이유로 백신 접종 대상을 젊은 층에까지 확산했다. 이로 인해 부작용 사례가 많이 출몰하니 백신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이런 노쇼 백신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우리나라와 영국, 그리스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 30세 미만 접종제한을 걸어뒀는데, 이는 접종률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며 “독일의 경우 60세 미만에 제한을 걸어뒀고 다른 유럽국가도 50~60세 미만 접종 제한을 걸어둔 상황이다. 물론 집단면역 형성도 중요하지만, 백신 접종의 의미는 우선 사망자 발생을 줄이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고령층 백신 접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같은 시민사회와 의료계의 의견을 반영한 대책을 발표했다. 백신 접종 대상인 고령층의 연령대를 65세 이상에서 60세 이상으로 확대하고, 백신 예비명단 등록 애플리케이션(앱)을 제작하겠다는 것. 

정부는 ‘5월 이후 코로나19 예방접종 추진계획’을 통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2분기 접종대상 고령층을 당초 65~74세에서 60~74세로 확대한다. 최종적으로는 상반기 1200만 접종 목표를 1300만 명으로 상향할 것”이라며 “예방접종 사전예약을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 개발도 추진 중이다. 백신 폐기 최소화를 위해 취소로 인한 잔여 백신 발생시 희망자에게 알림 기능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해당 대책에 대해 “정부가 고령층 백신 대상을 확대한 것은 잘한 일”이라며 “다만 이날 정부에서 밝힌 접종 목표 인원 확대 계획은 우려스럽다. 현재 정부가 밝힌 접종 목표는 1차 접종을 말하는 건데, 어설프게 1차 접종률을 높이는 것보다는 필요한 계층의 완전 접종률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목표치에 집착하기보다는 처음 원칙대로 고령자에 대한 백신 접종률을 최대한 높여서 사망 사례를 막는 방향으로 백신 계획을 운용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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