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장] 

글로벌 경제는 뉴노말(New Normal) 시대로 접어들었다. 미국 등 주요국들은 4차 산업혁명이 몰고오는 시대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경제적 표준의 개념인 뉴노말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중국도 신창타이(新常態) 정책을 통해 새로운 경제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준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의미다.

제4차 산업혁명의 의미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빨리빨리’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놀라운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뤄냈고 이를 닮고 싶어 하는 나라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빠른 추격자 전략에 의한 고속 성장은 없다.

현재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2006년 이후 11년째 2만 달러 대에 머물러 있고 지난 수십 년 한국을 먹여 살린 주력산업의 위기와 구조조정 소식이 이제는 현실이 되고 있다. 신성장동력이 필요하다고 외친지도 한참 지난 요즘 정말로 뭘 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그 대안으로 요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대융합과 데이터 혁신이다. 모든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온라인의 클라우드 컴퓨터에 빅데이터로 저장된다. 인공지능은 빅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제공한다.

결국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예측된 제품과 서비스 시장을 선점하는 기업 및 국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도권을 갖게 될 것이다.

고령화 시대의 해결책 바이오헬스산업

또, 21세기 인류가 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난제는 인구고령화다. 2025년이 되면 미국의 의료보험 재정이 노령인구의 증가에 따른 의료비상승으로 파산할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고, 우리 건강보험 재정도 2020년이 되면 2조 8천억 원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이 문제들의 실마리는 바이오헬스산업이 쥐고 있다.

우리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이미 우리나라는 ICT 업계의 얼리 어답터다. 우리나라는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를 기반으로 세계수준의 의료기술을 가지고 있고, IBM의 인공지능 인지 프로그램인 왓슨은 가천대학교와 협력해 우리나라 환자의 진료현장에 뛰어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 우리에게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단일화된 국민건강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강점을 어떻게 4차 산업혁명에 접목시킬지가 관건이다.

정부 규제 벽 과감히 헐어야

그러나 정작 우리는 그러한 노력보다는 주도권싸움이 우선인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바이오헬스에 관련된 부처가 너무 많다. 또,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한다.

요즘처럼 빠르게 변하고 있는 바이오헬스산업의 혁신과 성장을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컨트롤 타워도 없는 분산된 구조에 의존한 거버넌스는 실효성이 낮다. 바이오헬스산업을 혁신적 산업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소모적 경쟁이 아닌 통합적 협력을 위한 최적화된 바이오헬스 전담부처를 마련해야 한다. 영국의 바이오청과 같은 전담부처를 벤치마킹한다면, 우리도 정밀의료, 디지털 헬스케어 등 데이터 혁신과 융합을 빠르고 체계적으로 지원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구글, 애플, IBM 같은 글로벌 ICT 기업은 산업융합(Industry Convergence)이라는 컨셉으로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에 뛰어들었고, 중국의 3대 ICT 기업인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이들 기업에 대한 정부의 입장에는 공통점이 있다. 기업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간섭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둔다는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새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존 기술이 자유롭게 결합해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그와 더불어, 규제도 시장과 함께 진화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야 하는 현 시점에서 규제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어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또, 바이오헬스산업의 혁신과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과 병원이 협력적 혁신(Collaborative Innovation)을 통한 융합이 가능하도록 판을 만들어 줘야 한다. 여기에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이어져 효율적인 생태계가 구축되고 바이오 신생기업과 병원이 상호 협력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수많은 데이터를 혁신하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해 실력 있는 데이터 과학자(Data Scientist) 10만 명을 양성하는 것 또한 신정부가 신경 써야 할 과제다.

바이오헬스산업은 스피드다.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 경제 구조에서 바이오헬스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부와 대기업, 의사, 바이오 전문가, 바이오 산업 종사자 모두의 담대한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 빅데이터 전문가 양성 시급

한국바이오협회는 작년부터 매년 40여 명씩 유전체 분석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8주간 이뤄지는 교육은 리눅스 프로그래밍 언어, 생물정보학과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NGS 실무 등 5개 과정으로 운영된다. 유전체 관련 직종 취업을 희망하는 대학생과 기업 재직자가 주로 참가한다.

국내 바이오 분야 빅데이터 전문가는 50여 명이 채 안 된다. 대학과 병원, 일부 대학원에서 관련 학과를 운영하지만 빅데이터 전문가 양성 과정은 손에 꼽을 정도다. 박사급 인력을 포함해 최대 1만명 이상 전문가가 있어야 미래 바이오산업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 빅데이터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병원과 대학에서는 전문 교육과정이 개설되거나 확대 운영되고 있다. 서울대의대는 기존 의료정보학과를 ‘정보의학과`로 확대 개편할 예정이다.

현재 정원인 6명을 배 이상 확대하고, 교육 과정도 빅데이터 분석에 초점을 맞춘다. 박사급 인력뿐만 아니라 전공의도 교육과정에 참여시킨다. 구체적 교육 프로그램과 정원은 논의 중이다.

병원과 대학에서 바이오 빅데이터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산업지형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신산업, 융합산업 태동은 전통 바이오산업도 `데이터’ 기반 첨단산업으로 변화가 요구된다. 사물인터넷(IoT) 기술로 개인 신체, 운동 데이터가 실시간 쏟아진다. NGS 등 기술 발달로 베일에 싸인 유전체 분석이 가능해지며, 데이터 활용 폭이 확대됐다. 최근 주목받는 인공지능(AI) 역시 빅데이터가 근간이다. 데이터 접근성, 분석 역량이 산업 주도권 확보를 결정한다.

바이오 빅데이터는 기본적인 개인 신체, 운동량 데이터부터 임상정보, 유전체 데이터, 미생물 정보까지 헬스케어 분야를 포괄한다. 현대의학이라고 불리는 정밀의료 구현은 물론 새로운 물질 발견, 치료법 개발 등 활용처가 무궁무진하다.

현재 ICT·데이터 관련 산업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고급 인력 부족이다. 하지만 격무에 시달리고 노후를 걱정하는 엔지니어들의 모습을 보며 그 누구도 데이터 산업을 이끌겠다고 뛰어들 사람은 없다.

정보통신기술(ICT)과 데이터 산업의 융합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이 대한민국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에 차기 대선주자들도 관련 공약을 연구·발표하며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앞으로의 10년이 새삼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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