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삼육대 약학대학 교수]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에서 최대 화두로 떠오른 4차 산업혁명은 어느덧 우리의 삶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미처 변화의 낌새를 알아채기도 전에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등 신기술이 우리 약사들의 터전인 약국마저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고, 많은 미래학자들은 약사를 미래에 사라질 직업의 앞자리에 배치하고 있다.

반면, 그들은 미래 사회 역시, 사회적 성취나 성공이 아닌 ‘건강하게 사는 것’에 가장 큰 가치를 두게 될 것이라 얘기한다. 그럼에도 약사 직능이 위축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준비 부족에 기인한다.

우리나라 약사들은 17년 전 2000년 의약분업 시점에 제도적으로 보장받은 약무인 “조제와 복약지도”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0.1%의 수가인상에 목을 매고 있다. 반면, 유사 보건 직능들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수십 종의 다양한 의료행위들이 의료보험 대상으로 편입됐고, 의료질평가지원금, 전문간호사제도 등 다양한 제도들이 도입됐다.

최근 내부적으로 “미래약사직능개발” “지역주민 건강관리자” “백세시대 건강관리센터” “노인약료전문약사” 등과 같은 제안들이 제기되고 있어 한편 다행스러우면서도, 이들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이 모아지지 않는 것 같아 여전히 걱정스럽다. 이에 필자는 우리가 기획하고 있는 미래약사직능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약학교육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향후 약사 직무 논리적 정리 필요

먼저, 사회적 필요에 근거해 2020년, 2030년, 그 이후에 약사가 담당해야 할 직무를 논리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이때, 해당 직무를 약사가 수행하면, 국민보건에 얼마나 어떻게 기여하고, 경제적 효과가 얼마나 큰지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약사가 제시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선 그 직무 수행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즉, 직무 수행에 필요한 교육을 받아야 하고, 그 교육 과정 역시 사회적 인정을 받아야 한다.(도표1) 그 직무가 중요한 경우에는 이에 더해 세밀한 절차와 자격시험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현 제도와 우리의 현 상황을 살펴보자.

약사법 제3조는 약사의 자격 조건을 “약학을 전공하는 대학을 졸업하고 약학사 학위를 받은 자로서 약사국가시험에 합격한 자”로 정하고 있다. 즉, 직무수행에 필요한 교육을 이수토록 정했다.

이 때 “약학을 전공하는 대학을 졸업하고 약학사 학위를 받은 자”란 약학대학의 교육이 약사 직무를 수행하는데 충분한 교육으로 입증됐음을 의미한다. 즉, “약학을 전공하는 대학을 졸업하고”는 사회가 공적으로 인정하는 표준화된 약학 과정에 따라 교육이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도표 2) 변호사,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와 간호사의 교육과정은 법적으로 평가·인증을 의무화하고 있는 반면, 약사 교육과정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절차는 매우 미흡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직무

오늘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약무에 대한 제안은 넘쳐나고 있으나, 그 타당성, 국민보건에 대한 기여도와 경제성에 대한 분석은 여전히 미흡하고, 그 약무 수행에 필요한 교육체계와 그 인정 체계의 구축 역시 지지부진하다. 법제의 미비는 더욱 심각하다.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와 변호사 양성 교육의 경우, 의료법, 고등교육법,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및 그 시행령 등을 통해 해당 교육기관들은 정기적ㆍ의무적으로 교육과정, 여건 및 교육 내용 등에 대한 평가ㆍ인증을 받도록 했다.

법령에 근거해 평가ㆍ인증을 시행함으로써 교육의 질을 보증하고 있다. 사회가 공적으로 인정하는 교육을 받은 사람만이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법제화했다.

우리의 형편은 어떤가? 현 법제 내에선, 약학대학이 학사 자격에 준하는 교육기간과 학점 수 기준만 충족하면, 약사 직무를 무시한 교육과정과 교육 내용으로 교육해도 무방하다.

약사면허시험은 전공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개방돼야 한다는 주장이 2016년 6월 6일자 교수신문에 기사화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관련 부서는 손을 놓고 있고, 법이 정한 “약학을 전공하는 대학을 졸업하고 약학사 학위를 받은 자”를 보증하기 위한 책무에 대해선 다들 못 본척하고 있다.

위에 제시된 법과 제도를 완비한 후에라야 우리가 필요한 교육 내용과 과정을 거기에 탑재할 수 있고, 우리가 준비하고 교육하는 새로운 직무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예상되는 변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교육체계, 교육 방법 및 교육 내용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강의실 없는 교육, 입체형 교육, 맞춤형 교육 그리고 배려하는 교육 등이 예측된다. 이미 하버드대, 예일대학 등은 세계 최고 석학들의 강의를 온라인에 제공하고 있고, 화상 심포지엄과 학술 토론이 활성화 되고 있다.

시공을 초월한 교육장이 나와 같이 어눌한 교수들의 목줄을 조여 오고 있다. 실무교육 분야 역시 가상환경 교육이 지배할 것이다. 해부학 강의와 실습은 시뮬레이션 수준을 넘어 실제 실습환경보다 더욱 정밀한 가상공간 교육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가상공간을 활용한 실무 교육의 진화속도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진행될지 예측이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에 가상현실 기술이 접목되면 실무 학습과 훈련은 마치 실제적 경험처럼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생명과학과 IT의 융합 기술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맞춤형 교육의 신세계를 열어갈 것이다.

이 모든 변화가 인류의 행복과 번영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도구의 발달은 목적을 침탈하고 인류를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이 제한된 기관에 의해 수행되는 교육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만약 가상공간에서 교육이 진행된다면, 그 교육과정, 내용, 실행 및 성과 등에 대해 어떻게 검증하고 인정해야 할까? 그 과정에서 발생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의 정비가 중요하며, 그 일들은 여전히 우리들의 몫이다. 그래서 마음이 바쁘다.

인류가 추구할 최고의 가치

인류가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최고의 가치는 생명이다. 생명 존중의 길, 특히, 여린 생명을 지지하기 위한 선한 길을 열고 넓히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인간의 생명과 안녕에 직접 관여하는 직능에 대해선 엄정한 절차를 거쳐 특정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그 대표적 직능 중 하나가 약무이며, 생명 존중의 정신은 교육에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 생명 존중의 가치가 훼손되는 약무 현실을 접하게 될 때마다, 오늘도 미루어지고 있는 약사직능 교육의 질을 보증하고 직무역량을 인정하는 법제 정비의 미흡은 우리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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