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제약업계가 페어 플레이를 강조하고 있는 현재, 말로만이 아닌 실제 영업현장에서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윤리경영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하지만 신약개발 능력이 없는 제네릭 중심의 중소 제약사들의 경우 마케팅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대부분 경제적 이익 제공과 인적 관계 영업에 의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기업이 표방한 구호와 영업현장의 현실은 여전히 많은 갭이 존재하고 있다. 제약사들이 CP 상위 등급이나 ISO 37001 인증을 받으려는 것도 제도들이 상징하는 윤리경영을 반드시 실천하겠다는 의지보다는 보여주기식 전략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제약업계 전체가 이전보다 윤리경영 의식이 향상된 건 분명하다. 다만 아직까지는 진정한 변화가 아니고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게 문제다. 본지는 지출보고서 제도 시행 전·후, 변화된 제약 영업·마케팅 환경을 통해 한국판 선샤인 액트가 안고 있는 한계점을 짚어보고, 제도권 안에서 시장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영업·마케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한편, 현장 영업직 인력들의 얘기를 담아봤다.

▶▷ 경제적 이익 제공, 의사 ‘처방 패턴’에 영향

美 선샤인 액트 ‘벤치마킹’, 한국형 지출보고 전격 시행

K-선샤인 액트의 모태는 미국이 6년전부터 시행한 선샤인 액트다. 2010년 법안이 통과돼 2013년 8월부터 본격 시행됐고 2014년부터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센터(Centers for Medicare and Medicaid Services, CMS) 홈페이지를 통해 오픈 페이먼트 데이터(Open Payment Data)를 공개하고 있다.

선샤인 액트 시행 이후 미국에는 어떠한 변화가 찾아 왔을까?

미국 비영리 인터넷 언론 프로퍼블리카가 2016년 발표한 분석 결과에 따르면 기업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받은 의료진은 아무것도 받지 않은 의료진 보다 오리지널의약품 처방률이 2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미국 UCLA Ian Larkin 교수팀이 미국 대학병원들이 영업사원과의 디테일링(의사 방문)을 제한했을 경우 처방 패턴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분석한 결과에서도 의미심장한 결과가 나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영업사원의 의사 방문이 제한되자 의사 5~10%가 오리지널에서 제네릭으로 처방을 바꿨고 오리지널 의약품의 시장 점유율도 9%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약회사(영업사원)의 마케팅 제한이 의사들의 처방 패턴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향후 CMS 공개 항목을 늘리는 등 정보 공개를 더욱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 지출보고서, 견제 장치 역할 ‘미흡’ … 한계점 드러내

자문료 등 예외 규정, 전체 경제적 이익의 상당 부분 차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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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K-선샤인 액트를 통해 불법 리베이트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지만 여전히 일각에서는 한계점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과 달리 모든 정보를 불특정 다수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 시 보건복지부만 확인할 수 있어 감시 및 견제 장치로서의 역할보다는 요식 행위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고 강연료, 자문료 등 지출보고서 작성 항목에 빠져 있는 예외 규정이 전체 경제적 이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이를 모두 포함시켜야 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강연료의 경우 단발성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지방 곳곳을 순회하는 일정으로 만들어 지급 금액을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제약회사들이 이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따라서 모든 경제적 이익을 지출보고서에 담아야만 제약회사-의료인 불법 리베이트 고리를 차단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보건복지부는 K-선샤인 액트의 최종안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제약업계의 의견을 상당 부분 수용하며 한 발 물러섰다. 지출보고서 양식 초안 공개 이후 제약업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지원 금액에서 1만원 이하 기념품비 및 식음료비, 강연료, 자문료 등은 기재 생략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지출보고서 전 항목에서 의사면허번호 및 서명 기재란을 삭제했다.

리베이트 쌍벌제, 청탁금지법(김영란법) 등이 사후적 규제 수단이었다면 K-선샤인 액트는 사전에 의약품 등의 거래 관계의 투명성을 높임으로써 불법 리베이트의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사전적 규제 수단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정부가 강조한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K-선샤인 액트의 시행이 불법 리베이트 적발을 위한 취지가 아닌 만큼 지출보고서의 전체 스크리닝(지출보고서 내용 확인) 계획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중견제약사 상당수는 K-선샤인 액트에 대비해 자체 개발 혹은 외주업체 위탁을 통해 법인카드 비용 처리의 승인절차 및 증빙서류 첨부를 자동화하는 지출보고시스템을 구축해 놓았거나 한창 준비를 하고 있고 영업사원을 대상으로 강력하게 CP 교육을 진행하는 등 겉으로는 보건복지부가 기대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지출보고서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자문단’이 진행한 설문조사(한국제약바이오협회, 글로벌의약산업협회,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등 사업자단체 회원사 기준으로 제약업계의 87.5% 참여)에서도 제약사의 90%가 지출보고서를 작성 중이거나 작성 예정이라고 답해 K-선샤인 액트에 대한 참여도가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온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 의사, 전처럼 대면은 가능, 증빙처리 요청엔 ‘난색’

“법망만 피하면 된다”의식 팽배 … 선의의 피해자 양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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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사원들은 대체적으로 현장에서 의료진들에게 지출보고서 작성과 관련해 싸인 및 방명록, 사진촬영 등의 증빙처리 요청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추후 강제적으로 의료진의 서명을 받도록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강제화 되면 영업 환경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최근 주요 대학병원 및 종합병원 대형병원 의료진과의 만남이 쉽지 않다는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서는 크게 공감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다수였다. 방문을 거절하기보다는 지출내역서 보고 내용이 필요한 경우 해당 행위(서명 등)를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개인병원 의료진을 방문하는데 있어서도 과거와 크게 차이가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영업사원들은 정부가 K-선샤인 액트의 성공적 정착에 신경 쓰고 있는 만큼 회사 차원에서 이를 준수하려는 움직임이 강하다고 밝혔다. 지출보고서 작성 의무화로 판촉비 집행에 제약이 따르는 만큼 제네릭 의약품의 영업활동은 확실히 이전 보다 어려워 졌다는 데는 대체적으로 의견을 같이했다.

또 일부 제약회사들이 지출보고서 작성에 소홀하거나 누락하는 경우를 직·간접적으로 듣거나 본적이 있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잘 지키는 회사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불법 행위가 제대로 적발되지 않고 제재가 가해지지 않을 경우 당장 실적이 최우선 목표인 영업사원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제도의 취지도 크게 희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 실적 경쟁에 CSO로 눈돌리는 국내 제약

그렇다면 이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 앞으로 제약회사는 어떤 식으로 마케팅 및 영업활동 전략을 짜야 할까?

그동안 국내 제약회사들은 영업 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이나 영업 툴 개발은 등한시 하고 매출 확대를 보장하는 리베이트 영업에 매달려 왔다.

이러한 이유로 리베이트 없이는 영업사원 스스로 의사들의 처방을 유도할 수 있는 전문성의 결여가 고착화 됐다. 일부 대형병원과 병·의원들은 제약사 영업사원과 도매업체가 리베이트 제공이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다른 업체의 리베이트 조건을 슬쩍 내비치며 이들을 압박했다.

이처럼 제약업계 전반에 리베이트 영업이 만연하다 보니 리베이트를 활용해 높은 성과를 낸 일부 제약사 영업맨들이 회사를 나와 CSO 개인사업자로 뛰어들면서 CSO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또 제약회사의 직접적 통제를 벗어난 이들이 실적을 위해 경쟁하면서 CSO가 불법 리베이트의 ‘몸통’이라는 지탄을 받았다.

▶▷ 영업·마케팅, ‘원론적’ 접근 필요한 시점

음지에서 활개를 쳤던 불법적 마케팅 및 영업활동을 발본색원하기 위해서는 우선 제약회사의 오너를 비롯한 경영진의 확고한 준법·윤리경영 의지가 필요하다. 그동안 제네릭 의약품 난립으로 인한 과당 경쟁 속에서 제약회사들이 영업사원의 불법 행위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묵인해 왔지만 이제는 이러한 모습이 바뀌어야 회사가 살 수 있는 시대가 바로 눈앞에 있다.

오리지널 의약품에 비해 학술적, 임상적 에비던스가 한참 부족한 제네릭 의약품의 한계, 자체 개발 제품보다 다국적제약사들과 손을 잡고 코마케팅을 하는 품목의 매출이 더 많은 상위 제약사의 현실은 부끄럽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주소다.

창간 특집 취재 과정에서 몇 몇 병·의원 의사에게 정말 도움이 되고 바라는 영업사원의 모습은 무엇이냐는 원론적인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의사들의 답변 역시 대체적으로 원론적이었지만 제약회사들은 이들의 답변을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의사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고 무엇은 부족해 하는지 함께 생각하고 이를 해결해 주려는 노력을 보일 때 그 영업사원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고 방문을 기대하게 된다는 것인데 기본을 너무 오랫동안 놓친 것은 아닌지 반성이 필요하다.

K-선샤인 액트의 시행 이후 영업 환경이 더 악화됐다는 볼멘소리를 내기에 앞서 제약회사, 영업사원 모두는 이 목소리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늦었지만 함께 노력해 고객인 의사들이 만족할 수 있는 마케팅 및 영업 툴을 만드는데 지금이라도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 ‘근거 중심’ 영업·마케팅 체계 구축 시급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과학적 근거를 통해 제품 정보와 디테일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영업 활동의 기본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한 고민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 제약회사는 영업사원들의 학술적인 지식 능력을 배양하고 제품의 이점을 각인시킬 수 있는 홍보 키 포인트를 만들어 차별성을 부각시키는데 힘써야 한다. 또 PM이 제품을 제대로 육성할 수 있도록 조직을 강화하고 회사 수익에 대한 책임 및 구조를 마케팅·영업 조직에만 부과하는 기존 업무 프로세스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해 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제품의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추가 임상 및 적응증 확대 등으로 고객인 의사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근거 중심 영업·마케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매번 별다른 차이가 없는 동일한 제품에 대한 반복적인 학술심포지엄이나 세미나가 아니라 참석한 고객들의 관심과 니즈에 부합하는 자리를 고민해봐야 한다.

▶▷ 품질·가격경쟁력 강화 … ‘자립’ 첫걸음

능력이 아무리 출중하더라도 불법 리베이트를 바탕으로 영업활동을 전개하는 CSO들과는 당장에는 손실이 있다 하더라도 과감한 정리가 필요하다. CSO 불법 행위의 최종 책임자는 결국 제약회사이기 때문이다.

의사들 역시 그동안 리베이트라는 불법적 관행에 익숙해져 국민 건강이라는 최우선 가치를 뒤로하고 개인의 이익 추구에 집중한 것은 아닌지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 리베이트는 곧 건보재정과 맞닿아 있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이 국민의 혈세로 마련된 건보재정 고갈의 위험요소 중 하나라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는 윤리 의식의 재정립과 더불어 제약회사의 불법행위를 제어하는 감시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 ‘정책 뒷받침’ 절실 … “기업 혼자는 안된다”

현재 세계 각국이 고령화시대에 접어들면서 늘어나는 의료비 절감 차원에서 제네릭 의약품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관련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그런 시대적 흐름을 감안한다면 제네릭 중심인 국내 제약산업도 분명 새로운 대안을 찾아낼 수 있다. 우수하고 가격이 저렴한 제네릭 의약품을 생산·공급한다면 국내 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다.

최근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CIS(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독립국가연합) 국가에 국내 제약회사들이 진출할 수 있도록 여러 지원책을 마련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CIS 국가에는 러시아를 필두로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 등이 포진해 있다. 이들 국가는 적극적인 경제 활성화 정책을 통해 최근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으며 의약품 수입의 비중이 높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국가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러시아의 경우 의약품 수입 비중이 80%에 달하고 있으며 우즈베키스탄이나 우크라이나 등도 5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원희목 회장은 취임 이후 우즈베키스탄과 MOU를 체결하는 한편 협회 주최로 진출 지원 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정부 역시 규제 일변도의 정책만 내놓을 것이 아니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처럼 국내 제약산업이 진정한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 완화와 더불어 다양한 지원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최근 정부는 위탁(공동)생동 제도 전면 금지, 일반의약품 안전성·유효성 심사 면제 폐지, 우선판매품목허가 요건 정비, 공동생동 품목에 대한 약가 차등제 등을 예고하며 규제 정책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발사르탄 사태를 계기로 여론의 힘을 빌려 그동안 손대지 못한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환부를 한 번에 도려내겠다는 것인데 의도는 좋지만 그만큼 업계 반발과 시름도 커지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 상위제약사 육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중소제약사는 등한시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잘했건 잘못했건 중소제약사도 그동안 국내 제약산업계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만큼 중소제약사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균형감 있는 정책과 지원책을 마련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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