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케이주’가 허가 2년 만에 국내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식약처는 인보사 허가 당시 회사가 제출한 신청서류만으로 허가를 내준 것도 모자라 안전관리에도 실패했다. 식약처가 기업이 제출한 ‘자료의 진실성’에 대해 검증할 책무를 방기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태인 셈이다.

그렇다면 다른 신약과 세포 치료제는 어떨까. 본지는 이에 대해 최근 한 달여간 심층 취재를 진행했다.

팜뉴스 취재진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도자(바른미래당) 의원실로부터 ‘국산 신약 전체 30개, 품목점검(임상제도과 신설이후)’ 현황 자료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허가된 신약 4종에 대해 의뢰자(제약사)와 CRO(임상시험수탁기관)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는 실태조사를 아예 ‘패싱’하고 허가를 내준 신약도 있던 것으로 이번 취재 과정을 통해 확인됐다. 식약처가 기업이 제출한 ‘자료의 진실성’을 검증할 책무를 방기한 것.

전문가들은 제약사들이 제출한 자료의 사실여부를 따지기 위해선 허가 당국의 실사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약사는 “인보사 사태가 왜 발생했는지 벌써 잊었는냐”고 반문하며 “코오롱생명과학이 허가 전에 자료를 제출할 당시 ‘연골세포’라고 주장했지만 나중에 그게 아니란 사실이 밝혀졌다. 식약처가 사측이 제출한 ‘자료의 진실성’을 검증할 책무를 방기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비판했다.

≫ 유명 제약사 국내 신약 4종, 실태조사 없이 시판 허가

해당 문건을 구체적으로 보면, 식약처는 A, B, C 신약 3종에 대해 임상시험실시기관 실태조사를 시행했지만 정작 의뢰자와 CRO에 대한 실태조사는 없이 시판 허가를 내준 것으로 드러났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의는 “실태조사를 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상당히 심각하다”며 “식약처가 신약의 자료 도출 과정에서 임상시험관리기준에 입각해 문제없이 진행됐는지를 전혀 파악하지 않은 것이다. 그저 ‘제대로 했을 것’이란 맹목적인 믿음으로 자료를 심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엄격하게 GCP(임상시험관리기준)와 SOP(표준작업지침서)를 지켰는지를 봤어야 했다”며 “제약사가 자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하거나 취약한 피험자를 참여시키지 않았는지도 확인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데이터 조작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점도 문제다” “신약 3종에 대한 임상이 제대로 진행됐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앞서의 A, B, C 신약 3종이 시판되기 전에 식약처가 제약사와 CRO에 대해 GCP 및 SOP 준수여부를 감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임상시험 관련 실태조사’는 3상 임상시험을 실시한 제약사나 CRO 위주로 이뤄져 왔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식약처 임상제도과 관계자는 최근 팜뉴스 측에 “임상시험 관리기준에 따라 임상시험의 복잡성 등을 고려해 핵심 임상시험(3상 임상시험) 위주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다”며 “실태조사는 다른 의약품도 의뢰자(또는 CRO)나 실시기관에 대해 생략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명했다.

≫ 세포치료제 2종도 실사 ‘패스’…조건부 허가 ‘남용'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최도자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식약처는 D 신약에 대해 허가 전 제약사를 비롯해 CRO, 임상시험실시기관에 대한 실태조사를 시행하지 않았다. 환자들에게 버젓이 처방되고 있는 신약이지만 ‘자료의 진실성’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식약처는 해당 D 치료제에 대해 “임상시험 특정 질환을 대상으로 디자인 돼 복잡하지 않고 평가변수가 객관적이었다”며 “의뢰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3년 8개월 전에 거쳤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성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른 신약들은 유효성 지표가 객관적이지 않아서, 실태조사를 받았나”라고 반문하면서 “일반적으로 허가 영역에서 유효성 지표는 객관적인 것들이다. 식약처의 설명이 오히려 객관적이지 않아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른 약사는 “D 약이 실태조사를 받을 당시엔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었다. 품목허가를 위한 실태조사가 아니었다는 의미다”고 덧붙였다. 다른 신약들이 시판 바로 직전, 식약처의 실태조사를 받은 점을 고려하면 D 신약이 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인 것.

더욱 심각한 것은 세포치료제도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도자 의원실로부터 단독 입수한 식약처 ‘세포치료제 22종 품목점검(임상제도과 신설이후)’ 현황에 의하면, 세포치료제 2종 역시 의뢰자와 CRO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E 치료제의 경우, 조건부 허가를 받은 품목으로, 향후 임상시험 결과가 제출되는 대로 실태조사를 진행할 계획이었다는 게 식약처 임상제도과 관계자의 해명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조건부 허가의 남용’이란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앞서의 전문의는 “환자들이 버젓이 쓰고 있는 세포치료제인데 조건부허가를 이유로 실태조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조건부 허가 제도가 남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태조사를 누락한 세포 치료제가 ‘제2의 인보사’가 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약사는 “인보사 사태를 겪은 식약처라면 세포치료제나 바이오의약품들에 대한 접근은 더욱 꼼꼼해야 한다”며 “화학약품의 검증은 비교적 간단할 수 있지만 바이오의약품이나 세포치료제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식약처는 제약사가 제출한 자료에 대해 부실검증을 했다”며 “새로운 세포치료제가 계속 등장하는 상황에서 식약처가 실태조사를 방기할 경우 바뀐 세포가 또 나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 미국선 품목실사 거치지 않은 신약, 허가조차 될 수 없어

식약처가 신약과 세포치료제에 대한 실태조사를 누락한 점은 해외 규제당국의 대응과도 비교된다.

미국 FDA는 PAI(pre-approval inspection) 제도를 통해 시설위험(Facility Risk), 제품위험(Product Risk), 생산 위험(Process Risk)에 기초해 품목실사(실태조사)에 나서고 있다.

특히 ‘제품위험’과 관련해서는 새로운 분자 실체(New molecular entity)의 경우 신청자의 접수가 처음이거나(First application filed by applicant) 퍼스트 제네릭(ANDA)일 때, 또는 혁신(breakthrough) 신약이라면 허가 전 품목실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FDA가 이 같은 PAI 목적에 대해 “제출된 자료의 CMC 즉, 화학제조 및 제어(chemistry manufacturing and control) 부분과 로우 데이터(raw data)가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APEC 규제조화센터의 ‘미국 의약품 허가제도’ 보고서에 나타난 신약허가 프로세스에 따르면, PAI 제도에 의한 품목실사를 거치지 않은 신약은 허가조차 될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의 약사는 “FDA 기준에 따르면 국내 신약이나 세포치료제에 대해 식약처가 검증 의무를 명백히 방기한 것”이라며 “더구나 세포치료제는 전례 없는 치료법이기 때문에 인보사 사태를 방지하려면 실태조사를 반드시 거쳐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국내 신약 등 고위험 임상시험에 대한 실태조사를 강화하기 위해 최근 임상시험발전 5개년 종합계획을 마련했다”며 “첨생법(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첨단바이오의약품에 대한 안전관리 기반이 확충될 것으로 기대하며, 세부 규정을 통해 구체화할 예정이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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