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국정감사 시즌이 돌아오면 '무용론'이 고개를 든다. 의원들은 싸우기 바쁘고 기관장들은 피로감에 극에 달한다. 국민들도 "우리가 저 사람들 싸우는 것을 뭐하러 봐야 하느냐"라면서 TV를 꺼버린다. 우리네 '삶'과 유리된 '그들만의 리그'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무용론'이다. 

그렇다면 과연 '국감'은 무용할까. 정부 기관장을 질타하고 의원들이 이슈만 챙기는 홍보 행사로 전락한 것일까. 이런 질문에 기자조차 확실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다. 기자도 매년 국회 보건복지위 국감을 취재할 때마다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8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정감사에서 우연히 스치듯 지나간 장면을 보고 조금은 생각의 방향이 달라졌다. 

김민석 의원 질의 모습
김민석 의원 질의 모습

김민석 민주당 의원이 당시 강중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이하 심평원장)을 향해 "신생아 감염병 관련한 뉴스들이 많다"며 "신생아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는 1세 이하의 영아, 신생아들의 치명률이 높다. RSV 백신은 매우 비싸고 수차례 맞아야 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지만 32주 미만 미숙아일 경우 형제·자매가 있어야 건보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감염 가능성이 주된 이유라는데, 현행 급여 기준에 따르면 쌍둥이·다둥이에도 적용이 안 된다. 이미 외동이 많기 때문에 저출산 환경에 맞지 않다. 심평원장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강중구 심평원장은 "(RSV 백신은) 약값도 비싸고 5번 정도 맞아야 한다"며 "여러 가지 고려 조건들이 있지만 복지부와 급여 범위 확대를 협의해보겠다"고 답했다. 

기자는 "RSV"라는 단어를 듣고 깜짝 놀랐다. 김 의원의 입에서 "RSV"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돌이 갓 지난 아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아들이 RSV 바이러스에 걸렸을 때 악몽과 같은 시간을 겪었다.

발병 첫날, 아들은 밤새 기침을 하면서 고열에 시달렸다. 그때는 단순 감기라고 생각했지만 새벽에 열이 40도까지 오르고 해열제를 먹어도 내리지 않았다. 결국 새벽 2시경 아산병원 소아 응급실로 향했다. 

아산병원은 '요로 감염이 의심된다. 소변 검사가 필요하다'며 아들에게 소변 주머니를 채웠다. 그러나 그날 새벽, 아무것도 먹지 않아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소변 검사에 실패하고 푹푹 찌는 더운 날 응급실 안팎을 계속 배회하다가 치료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늦은 오후, 결국 집 근처 Y종합병원 소아청소년과를 향했고 그곳에서 피검사를 진행한 결과 "RSV 바이러스 때문이다"라는 진단명을 처음 들었다. 결국 입원을 했지만 여전히 고열과 기침에 시달린 아들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수액 주사를 맞아야 했지만 소아 혈관 잡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간호사 2명이 붙어도 발버둥치느라 혈관을 잡지 못했다. 영양 공급은 물론 치료조차 할 수 없는 시간들이 쌓이면서 조바심이 커졌다.

입원 이튿날, 아침에 소아 전담 간호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혈관을 잡았다. 아들은 수액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고 항생제를 투여받기 시작했다. 다행히 입원 셋째날부터 호전을 보이기 시작했고 병원에서 4박 5일을 보내고 퇴원할 수 있었다.

일주일 동안 아들을 간병한 이후 RSV라는 단어조차 떠올리기 싫었다. 그런데 RSV바이러스를 김민석 의원이 언급한 것이다. 

둘째로 기자가 놀란 대목이 있다. 바로 RSV 백신이 있었다는 점이다. 

아들이 입원했을 당시 병원 측은 "RSV는 독감에 비해, 영유아 사망률이 2배일 정도로 위험하지만 치료제도 백신도 없는 질병"이라며 "대증 치료와 동시에, 항생제를 지속적으로 맞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국감을 통해, 예방 주사를 통한 수동 면역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만약 아들이 RSV 백신을 사전에 접종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작고 연약한 아기가 일주일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 수액을 맞는 고통은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구나 기자는 어린이 국가 필수예방 접종 사업(18종 백신 전액 지원)을 통해 웬만한 바이러스는 예방이 가능하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그 빈틈을 뚫고 RSV가 파고든 것이다.

셋째로 놀란 부분은 RSV 백신 급여 혜택을 지금껏 극소수의 영아들만이 받고 있었단 점이다.  

0~2세까지 영아의 95% 이상이 적어도 한 번 이상 RSV 바이러스를 겪는데도 급여 조건이 협소했다. 

급여 조건 중엔 "32주 미만 미숙아일 경우 형제·자매가 있어야 한다"는 부분이 있다. RSV가 초기 치료에 실패할 경우 중증 폐렴 등으로 진행할 정도로 치명적인 질병이지만, 수긍하기 어려운 급여 기준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중요한 사실은 모든 생각의 뿌리가 김민석 의원의 국감 발언을 통해 시작됐다는 점이다.  

그가 RSV 바이러스가 신생아와 영아에게 치명적인데도, 정부의 관심조차 없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회의원 한 사람의 힘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그런 힘은 국감을 통해 제기된 목소리가 TV 중계를 타고 퍼지면서 설득력을 얻을 때 폭발적으로 발휘된다. 

심지어 그동안 꿈쩍도 하지 않던 정부도 움직일 수 있다. 김 의원이 RSV바이러스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면서 "급여를 검토해보겠다"라는 심사평가원장의 발언까지 이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다. 

국정감사는 "국정에 대한 감시 비판을 통해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국정통제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김 의원의 RSV 관련 발언은 약 30초에 불과할 정도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국정감사가 결코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었다. 

적어도 그 순간, 국감 무용론이란 단어는 온데간데 없었다. 정쟁도 고성도 비난도 아닌, 오로지 국민과 환자의 모습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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