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김응민 기자]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꿈꿨던 목표나 장래 희망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포기하곤 한다. 현실이라는 높은 벽에 가로막혀 과거에 추구했던 것들을 접어 두고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종종 자신이 추구했던 꿈을 쫓아 멀고 먼 길을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팜뉴스가 금번 창간 특집 인터뷰를 진행한 파로스아이바이오의 채종철 전무(CSO, 최고과학책임자)도 그러한 인물 중 하나다.

채종철 전무는 연세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카이스트에서 계산 화학 및 분자 모델링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신약 개발을 꿈꿨지만 여의치 않은 현실로 삼성전자에 입사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설계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그는 25년의 경력을 넘어 제약업계로 돌아왔다. AI를 이용해 신약 개발을 진행하는 파로스아이바이오라는 제약회사로 말이다.

결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반도체 설계 전문가로 경력을 쌓은 그를, 다시금 제약업계로 이끈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지난 18일 팜뉴스는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파로스아이바이오 본사를 방문해 채 전무로부터 이에 대한 해답을 들었다.

파로스아이바이오 채종철 CSO(최고과학책임자, 전무)
파로스아이바이오 채종철 CSO(최고과학책임자, 전무)

프로필이 이색적이다. 제약업계와는 전혀 다른 계통(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의 경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

대학 시절 화학을 전공하고 계산 화학 분야로 석사 및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컴퓨터를 활용한 단백질 구조 분석이나 모델링 작업, 분자동역학 관련 분야를 연구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신약 개발이나 약물 연구 분야에 제 미래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가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던 2000년대 무렵은 컴퓨터 디자인을 활용한 약물 발견이나 인공지능 분야로는 그야말로 '암흑기'였다. 그래서 주전공이라 할 수 있는 컴퓨터 활용 기술을 반도체에 접목하는 분야로 도전하게 됐다. 25년 전에 삼성전자에 입사하게 된 배경이다.

당시 제가 맡았던 역할은 반도체 칩(chip) 설계도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CAE(Computer-Aided Engineering)라는 기술을 통해 공정과 설계 과정에서 에러 없이 빠른 시간 안에 디자인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또한 반도체 소자 설계의 핵심인 '소자 특성과 발광체의 효율 예측'을 위해 양자 계산화학을 하는 과정에서, 근사적 한계가 있는 고전 컴퓨팅 양자 계산을 극복할 수 있는 양자 컴퓨팅 기술을 접하고 연구하게 됐다.

2010년대 들어오니, 암흑기를 지나 성장기에 들어선 인공지능을 활용해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소자 공정에서의 불량률이나 에러를 줄이는 기술 개발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AI 신약 개발 기업인 파로스아이바이오에 합류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로 유명한 구글의 딥마인드는 알파고(AlphaGo)를 개발한 이후, 2018년에 새로운 인공지능 기술인 '알파폴드(AlphaFold)'를 공개했다.

20여년 전에 좌절했던 단백질 구조 예측 기술이 인공지능으로 구현돼 활개 치는 것을 보면서 가슴 한 켠에 있었던 무엇인가가 되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반도체에서 AI 기술은 타 산업분야에 비해 앞서 응용되고 있었고, 그간 반도체 설계와 CAE 분야에서 쌓은 경험과 틈틈이 연구한 양자 컴퓨팅 기술들을, 원래 꿈꿨던 신약 개발 분야에 활용한다면 시너지를 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파로스아이바이오의 윤정혁 대표를 만나게 됐다. AI를 통한 신약 개발이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미래라는 비전에 공감했고 제가 갖고 있는 경험과 역량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파로스아이바이오에 합류하게 됐다.

국내 제약사들이 AI 신약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대략 2010년대 중반부터다. 본격적인 개발이 이뤄진 기간은 비교적 최근인데, 이처럼 제약업계가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예전에는 모델링이라는 측면에서 '기술적인 한계'가 있었다.

이를테면 구조적인 화합물이나 단백질 모델링의 구조적인 정보들과 환자 특성, 약물 반응, 임상적 정보, EMR 등 개발 영역에 있는 정보들을 적절하게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7~8년 전에 등장한 딥러닝(Deep learning)이란 AI 기술이 이러한 이슈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GPU 등의 컴퓨팅 능력 발전으로 기존 빅데이터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성들을 '딥(deep)'하고 '히든(hidden)' 레이어에 투영하여 학습한 모델을 활용하는 기술인데, 여기서 더 나아가, 이종의 데이터셋들 간의 상관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멀티 모달리티(Multi modality)' 분석까지 응용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이 환자에 대한 데이터와 약물에 대한 데이터를 경험적으로 인식해 서로를 연결 지어 아이디어를 얻는 방식이었는데, AI는 이러한 멀티 모달리티 분석을 통해 상이한 데이터들을 통합해서 서로 간의 관계성을 쉽게 예측하는 것이 인간의 개입 없이도 가능해진 것이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동안 쌓여 있던 빅데이터들과 합쳐져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것이며, 앞으로도 멀티 모달리티 영역을 분석하는 방향으로 개발이 집중될 것으로 생각한다.

일찍부터 AI 신약 개발에 대한 가능성을 알아보고 개발한 파로스아이바이오의 신약 개발 플랫폼 '케미버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

<The best target, The best chemical>이라는 슬로건 아래 개발한 AI 신약 개발 플랫폼 '케미버스'는 약 62억건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약 개발에 있어 일종의 '네비게이션' 역할을 수행한다.

케미버스에 탑재된 단백질 3차원 구조 및 화합물 빅데이터는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으며 향후에는 조 단위(trillion) 수준으로 확장하기 위한 기반을 다지고 있다.

여타의 AI 플랫폼과 차별화되는 점은 신약 개발이라는 커다란 범주 안에서 단계별로 요구되는 AI 도구(tool)들을 파로스아이바이오가 자체 개발했다는 점이다.

비유하자면 집을 짓고 나서 필요한 물건들을 넣은 것이 아니라 집을 짓기 전에, 집안에 들어갈 블럭화된 방(room)을 미리 만들고, 나중에 하나의 집으로 쌓아 올려 완성되는 '모듈 집' 개념이다.

파로스아이바이오 채종철 CSO(최고과학책임자, 전무)
파로스아이바이오 채종철 CSO(최고과학책임자, 전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 파로스아이바이오가 직접 파이프라인을 개발한다는 내용이었다. 신약 개발에는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데, 여타의 플랫폼들과는 달리, 직접 신약 개발에 뛰어든 배경이 궁금하다.

파로스아이바이오가 창업할 당시만 하더라도 인공지능 신약 개발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기업들이 여럿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인실리코(In silico) 단계에서 AI를 활용해 화합물을 만드는 수준이었다.

우리는 남들과는 차별화되는 전략을 구사했다. 자체적으로 AI 활용 도구(tool) 역량을 갖추고 있었던 터라, 기존 신약 개발 과정에 인공지능을 접목해 최적화하는 방식을 연구했다.

이를 통해 혁신 신약 개발 사업화를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장기간의 개발 기간, 높은 비용, 낮은 성공 확률을 고도화된 자체 솔루션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현재 개발 중인 주요 파이프라인들을 살펴보면 희귀‧난치성 질환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희귀‧난치성 질환을 타겟으로 삼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설명해달라.

사실 희귀·난치성 질환이나 대중적인 질환이나 실제 개발 단계에서 소요되는 비용은 비슷하다. 그렇지만 글로벌 빅파마들은 시장 규모나 수익성 등을 고려해 희귀·난치성 치료제를 선뜻 들여오기 쉽지 않다.

이 점에 착안해 파로스아이바이오가 벤처 기업으로서 갖는 장점과 니치 버스터(Niche buster)로서의 역할을 고려해 보니 희귀·질환 치료제가 우리에게는 최적의 영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핵심 파이프라인의 개발 현황과 주요 성과들이 궁금하다.

현재 총 10개에 이르는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갖추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급성골수성백혈병과 재발성 난소암 치료제를 핵심 파이프라인으로 개발하고 있다.

AI 신약 개발 플랫폼인 '케미버스'를 통해 급성골수성백혈병과 재발성 난소암에서 발생하는 변이(mutation)에 특화된 타겟들을 발굴했고 인공지능 도구(tool)와 웻랩(wet lab) 인프라를 활용해 최적화(optimization)를 진행했다.

그 결과 독성을 예측하는 내용이나 임상시험에서 약효와는 별도로 약물이 가져야 하는 특성들을 빠르게 확인해 임상 오류(clinical error)를 낮출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임상 1상시험에 조기 진입하는 성과를 거뒀다.

끝으로 AI 신약 개발이 국내 제약사들에게 있어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만약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것들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라면 인공지능을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만, 아직까지는 다소 소극적인 부분들이 있었다.

지난 5~6년 동안 AI 신약 개발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다. 그동안은 기반을 닦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가시적인 결과물들이 만들어지는 단계가 될 것이다.

최근 들어서 제약사들의 생각도 이러한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개발 단계에서 축적한 많은 데이터들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면서 AI가 가진 멀티 모달리티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고무적인 것은 정부가 'K-멜로디'라는 사업을 통해 인공지능 신약 개발에 투자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점이다. 일종의 '연합학습'이라는 모델을 통해 제약사들이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해 낼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한편, 인터뷰를 하는 내내 채종철 전무의 눈동자는 시종일관 반짝였다. 모든 질문에 열정적으로 답하는 그의 모습은 직장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새내기를 어렴풋이 닮아 있었다.

마침내 인터뷰를 마치고 취재진은 한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눈빛은 다름 아닌 꿈을 쫓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반짝임'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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