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응민 기자
사진=김응민 기자

[팜뉴스=김응민 기자] 지난해 10월 진행됐던 21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대 화두는 단연코 '마약'이었다. 수많은 여야 의원들이 앞다퉈 마약류 오남용에 대한 심각성과 폐해를 지적했고 필로폰 투약 혐의로 기소된 가수 남태현 씨는 참고인으로 출석해 마약 중독의 위험성을 낱낱이 전했다.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은 국감 당시 "최근 5년간 국내에서 마약류 식욕억제제는 611만명의 환자에게 11억 3827만개 이상이 팔리며 매우 광범위하게 처방됐다"라며 "2022년의 경우 펜디메트라진, 펜터민, 암페프라몬, 마진돌 등의 순서로 처방량이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의료용 마약류를 자신에게 직접 처방한 의사는 ▲2020년 7795명 ▲2021년 7651명 ▲2022년 8237명으로 나타났다. 매년 8000명 가량의 의사가 이른바 '마약류 셀프 처방'을 하는 셈이다.

이후 마약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들었다가 기자가 구독 중인 의학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에 최근 게재된 영상 하나가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마약을 만드는 제약회사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면 벌어지는 일'이라는 제목의 영상으로 이비인후과 이낙준 전문의가 미국의 제약사 '퍼듀 파마(Purdue Pharma)'를 다룬 내용이었다.

자료=유튜브 닥터프렌즈
자료=유튜브 닥터프렌즈

오늘날 대부분의 의사들은 환자에게 통증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통증은 몸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signal)이지만 어떤 통증들은 그 자체가 생명(生命)에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9세기 무렵, 아편에서 추출한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 모르핀이 나왔는데, 당시에는 부작용을 알지 못해 무분별하게 사용했고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됐다.

이후 의료계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의료계에서는 통증이 있다면 가능한 비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또한 암성 통증이나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과 같이 극심한 통증에 한해 마약성 진통제를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영상에서 소개된 '퍼듀 파마(Purdue Pharma)'의 사례는 그야말로 끔찍했다.

미국 제약사 퍼듀 파마는 1990년대에 이르러 한가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당시 회사는 대표 품목으로 오피오이드 계열 진통제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특허 만료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신약은 전무했고 이에 리처드 새클러 CEO는 교활한 방법을 선택했다.

기존 약물과 거의 유사한 성분으로 이뤄진 마약성 진통제 '옥시콘틴(Oxycontin)'을 개발하고 적응증을 확대해 의약품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NRS 4점으로 설정한 것이다. 통증평가 척도인 NRS는 통증을 0~10점까지 수치화한 것으로 0점은 '통증 전혀 없음', 10점은 '극심한 통증'을 의미한다.

이 전문의는 "NRS 4점이면 심한 편도염을 앓거나 관절염이 있는 환자가 느끼는 수준의 통증이다"라며 "퍼듀 파마는 이런 환자들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쓰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FDA 심사관은 퍼듀 파마 측의 로비로 옥시콘틴을 정식 승인했고 '옥시콘틴 고유의 기능인 흡수 지연은 약물 남용 문제를 줄일 것으로 여겨진다'라는 문구를 달았다.

즉, 규제당국이 NRS 4점 수준의 경증인 통증 환자에게 마약성 진통제인 옥시콘틴을 처방해도 중독 위험성이 낮다고 공헌을 해준 셈이다. 옥시콘틴을 승인한 FDA 심사관은 이후 퍼듀 파마의 이사로 취직했다.

사진. 퍼듀 파마가 1998년에 진행한 옥시콘틴 마케팅 광고. 문구에는 중독을 겪는 환자는 1% 미만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퍼듀 파마가 1998년에 진행한 옥시콘틴 마케팅 광고. 문구에는 중독을 겪는 환자는 1% 미만이라고 적혀 있다.

옥시콘틴이 정식 승인을 받자 퍼듀 파마는 다음 단계로 의사와 환자들을 공략했다.

미모의 여대생들을 영업사원으로 채용해 엄청난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의료진을 대상으로 옥시콘틴을 영업했고, 국제 의학저널 NEJM에 실린 Letter에서 특정 부문만 발췌해 '의사의 처방에 따라 복용한 환자들은 중독률이 1% 미만이다'라는 문구를 홍보했다.

그리고 허리나 무릎 통증 등으로 고통받던 환자들이 옥시콘틴을 복용하고 일상생활이나 직장으로 복귀하는 이들을 섭외해 '옥시콘틴 덕분에 내 삶을 되찾았습니다(I got my life back)'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차 중독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의문을 제기하자 퍼듀 파마 측은 "이는 '유사 중독'이라는 현상으로 환자의 통증을 너무 낮게 평가해서 나타난 것"이라며 "충분하게 많은 양을 처방하면 호전되며 의사 처방대로 복용하면 중독성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답변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모든 내용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퍼듀 파마가 자체적으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두통 치료에서 옥시콘틴을 사용했더니 중독률이 13%를 기록했다. 또한 이마저도 조작된 수치로 앞서 1% 미만의 중독률과 위험성이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인 셈이다.

이에 따라 옥시콘틴의 처방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는데 1997년 67만건이었던 처방 횟수는 2002년에 600만건을 돌파했고 판매 금지 조치가 이뤄진 2010년까지 총 720억 정이 팔렸다.

또한 옥시콘틴으로 사망한 사람은 공식적으로 20만명이 넘고 수십, 수백만의 사람들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현재 미국에서 문제가 되는 펜타닐 등 오피오이드 계열 약물 오남용 사례의 상당수가 바로 이 옥시콘틴에서 초래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진. 퍼듀 파마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홍보 영상 'I got my life back'
사진. 퍼듀 파마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홍보 영상 'I got my life back'

이 전문의는 "퍼듀 파마와 경영진은 옥시콘틴을 이용해 수십조 원을 벌었지만 사법거래로 감옥을 가지 않았다"라며 "조 단위의 손해배상을 받아 냈지만 그들이 거둔 이익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부족한 금액"이라고 말했다.

이어 "19세기에는 마약성 진통제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불행한 일이 발생했지만 퍼듀 파마는 다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면서도 오로지 돈 때문에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라고 덧붙였다.

영상을 보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 겹쳐졌다. 앞서 국감의 사례와 각종 통계지표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금전적인 이득과 이기심, 무책임 때문에 마약류 의약품이 무분별하게 처방되고 오남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퍼듀 파마의 사례를 통해 잘못된 욕심이 사회적으로 어떤 해악(害惡)을 끼치는지 우리 모두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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