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김민건 기자] 작년 5월 '알 수 없는 유전변이 표적치료제 급여기준 설정'이란 제하의 기사를 썼다. 희귀암을 치료하는 MET 유전자변이 표적치료제 급여 기준 설정 과정에서 보인 암질환심의원회의 불투명성과 비효율성 등을 지적했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났고 해를 넘겼다. 진전된 사항은 없었다. 

최근 희귀암을 진료하는 A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A교수는 부친과 장인을 모두 암으로 잃었다고 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적잖이 놀랐다. 통상 인터뷰에서 다루는 것은 학술적 얘기가 대부분인데, 첫 만남에서 가족사를 들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암 환자를 진료하는 교수도 때로 의사가 아닌, 환자 가족과 보호자가 된다. A교수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환자를 위해서였다. 그는 "매일 암환자를 만나는 의사이지만 효과적인 치료제가 있음에도 비용 때문에 (치료를)포기한다고 말하는 환자의 모습, 환자가 진료실을 나서는 쓸쓸한 순간을 견뎌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환자를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의사가 아니라면 덤덤히 말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생명을 몇 개월 연장하는 게 무슨 의미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생명 연장을 넘어 남은 여생을 인간 답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은 본인과 가족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의미다"고 말했다. 그렇다. A교수는 암환자 가족이거나 의사일 때도 최선의 치료를 받게 하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컸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진단되는 암 중 하나가 폐암이고 많은 경우 비소세포암이다. 비소세포폐암 중에 희귀 유전 변이를 가진 환자들이 있다. MET변이 엑손14 결손 환자가 대표적이다. 이 환자는 기존 세포독성항암제나 면역항암제 보다 효과가 좋은MET변이 표적치료제가 출시돼 있어 사용할 수 있다.

A교수가 진료하는 환자 중에도 MET변이를 가진 경우가 있다. 그러나 MET 변이 환자 중 급여 문턱을 넘지 못해 임상 현장에서 치료를 포기하는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 A교수는 "건보 배정 분배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감기 같은 경증질환 중심 지출에서 벗어나, 치료가 시급하고 절실한 암환자들에게 더 많은 치료 기회를 보장해야 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정부의 적극적인 중증·희귀질환 보장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희귀 유전 변이를 가진 비소세포폐암 환자들은 예후가 좋지 않다. 특히 MET 변이 환자는 유전 변이가 없는 환자 대비 사망 위험이 3배 높다. 누군가에게 단순히 '3배'라는 수치이지만, 누군가에게는 3배 더 오래 살 수 있는 기회다.

이미 NCCN 같은 글로벌 진료 지침은 국소 진행성, 전이성 비소세포폐암에 MET 변이가 확인되면 우선적으로 표적치료제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면역항암제는 바이오마커가 발견되지 않을 경우로 지침을 정했다.

면역항암제 기반 치료를 할 경우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mPFS)은 5개월을 넘지 못한 반면, 텝메코(테포티닙) 같은 MET 변이 표적치료제는 15.9개월로 더 좋은 성적을 확인했다.

국내 현실은 어떨까. MET변이 표적치료제가 국내 출시된 지 벌써 2년 반이나 됐다. 두 번의 급여 도전이 있었지만 첫 관문인 암질환심의위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세상은 빨리 변화하지만 희귀암 환자, 보호자에게는 더디기만 하다. 

급여 적용이 가능한 MET 변이 표적치료제가 있지만 실제 임상 현장에서 쓸 수 있는 급여 치료제가 없다. 있는데, 없다라고 말할 수 있다. MET 변이를 확인해도 바이오마커가 있는 환자에 한해, 그것도 무진행 중앙값 5개월에 그치는 면역항암제를 쓸밖에는 방법이 없다. 

A교수가 한 이야기에 뼈와 살이 있다. A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국민 3명 중 1명이 암환자인 시대다. 치료 환경을 잘 만들어 놓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일이다"고 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MET변이 표적치료제 급여에 손놓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A교수처럼 환자의 손을 놓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텝메코는 국내 주요 13개 의료기관 약사위원회(Drug Committee, DC)를 통과해 약 30개 주요 거점 병원에서 처방 중이다. 미국FDA는 지난 2월 15일 조건부 승인에서 '정식 승인'으로 전환했다.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아 미충족 수요가 큰 질환에서 혁신적인 효과를 보인 텝메코를 조건부로 허가, 사용하다가 정당한 임상 데이터를 근거로 최종 승인을 결정했다.

새로운 28개월의 장기 추적 관찰 결과가 근거였다. 제약선진국 A8 중 6개국(미국, 영국,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일본)은 1차 이상 치료 차수에 텝메코 급여를 적용하며, 영국 NICE, 호주 PBAC, 스코틀랜드 SMC, 캐나다 퀘백주 INESSS는 급여를 권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텝메코 같은 MET 변이 표적치료제가 다시 급여 도전에 나설 것이 전망된다. 특히 텝메코는 FDA로부터 정식 승인받은 탄탄한 자료가 뒷받침 된다. 비록 2상이지만 희귀암 치고는 대규모인 313명의 환자에서 임상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했다.

MET 변이 환자는 전체 비소세포폐암에서 1.8~3.3% 수준으로 매우 적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세상에서 절대 떠나 보내고 싶지 않은 한 사람이다. 단순히 임상 참여 환자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암질심을 통과하지 못하는, '알 수 없는 기준'을 더 이상 적용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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