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최선재 기자] AI로 신약을 개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전통적인 신약 개발 방법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신약 개발 기간을 줄이기 위해 AI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고 연구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AI 신약 개발 플랫폼'은 어떤 원리를 통해 작동할까. 

약사신문(팜뉴스)이 이번 신년 특집 기획을 준비하기 직전, 떠올린 질문이다. 앞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적어도 AI 신약 개발 과정의 '기초'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초 없이 쌓은 지식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이다. 임재창 박사(히츠 CTO)를 수소문한 이유다. 

히츠는 생성형 AI 약물설계 플랫폼 '하이퍼랩'을 토대로 국내 제약사들과 협업을 이어오면서 국내 AI 신약 개발 생태계를 이끌고 있는 기업이다. 임 박사는 '히츠'의 공동 창업자로, 카이스트에서 딥러닝을 통한 신약 개발을 연구해 온 전문가다.

지난 4일, 본지는 서울 강남에 있는 히츠 본사에서 임 박사와 인터뷰를 가졌다. 임 박사는 복잡하고 어려운 AI 신약 개념을 쉽고 명쾌한 언어로 술술 풀어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창간특집 기획으로, 임 박사와의 현장 인터뷰를 공개한다. 

임재창 박사 인터뷰 모습1
임재창 박사 인터뷰 모습1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순간, 기자는 깜짝 놀랐다. 임재창 박사는 히츠 로고가 새겨진 후드티를 입었고 꽤 젊은 모습이었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라는 질문에 임 박사는 "94년생이다"라고 대답했다. 만 30세였다.

임 박사는 한국과학영재고를 졸업한 뒤 카이스트에 입학했다. 26살에 카이스트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남들보다 성취 속도가 몇 배나 빠른 게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조금 빨랐지만 결코 대단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번에는 히츠 소개를 부탁했다. 임 박사는 "2020년 박사 학위를 받고 지도 교수이신 김우연 대표와 히츠를 공동창업했다. 히츠는 AI 신약개발 스타트업이다. 인공지능 신약개발 플랫폼 하이퍼랩(Hyper Lab)을 지난해 8월 출시했다"고 전했다. 

보통 남성들이 군대를 다녀오고 학사를 마치는 시기에 박사 학위를 마치고 창업에 뛰어든 것이다. 

임 박사는 "연구자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다"며 "논문이 논문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실제 유용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실제 세상에서 작동하는 기술을 개발해 보자는 포부를 가지고 시작했다. 벌써 창업한 지 5년차"라고 전했다. 

히츠는 그동안 상당한 성과를 남겼다. 2020년 5월 창업 이후 불과 7개월 만에 10억 원 규모의 프리 A 투자를 이끌어냈다. 2022년 시리즈A를 통해 약 55억 원을 유치했다. 

히츠는 LG화학, 보령, HK이노엔 등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과도 협력했다. 국내 인공지능 신약 개발 플랫폼 기업 중에서는 독보적인 성과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으로 신약을 개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기자가 임 박사를 만나기 전에 가장 첫 번째로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임 박사는 먼저 컴퓨터와 AI의 차이를 언급했다.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약물 합성을 하고 실제 실험을 해야 한다. 1mg을 합성할 때마다 몇 주가 걸리고 최대 수백만 원이 들었다. 반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하면 몇 분이면 가능하다. 컴퓨터 가격이 내려가고 성능이 좋아지면서 컴퓨터가 신약 개발에 도움이 되기 시작했다. 분자 합성을 할 필요도 없고 가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시간이 압도적으로 줄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컴퓨터를 통한 신약 개발 방법(CADD-Computer Aided Drug Discovery)의 한계가 노출된 것이다.

임 박사는 쉬운 예를 들기 위해 '자율주행'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예를 들어 컴퓨터는 파란불 '직진' 빨간불에는 '멈춤' 좌회전 신호에서는 '왼쪽' 이런 식으로 일종의 룰을 만들었다. 그러나 갈수록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생겼다. 도로 모양이 전부 다르고, 끼어들 수 있는 등 룰로 정의할 수가 없는 상황이 초래됐다."

임 박사에 따르면 AI는 '룰'이 아닌 '데이터'를 알려주는 개념이다. 가변적이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판단이 가능한 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이다. 

그는 "AI는 사람이 정의한 한정적인 규칙을 넘어 다양한 상황에서 생성된 데이터로부터 자동으로 패턴을 추출하여 예측한다"며 "그래서 가치가 확 올라가고 응용성이 굉장히 높아진다. 특히 드럭 디스커버리(Drug Discovery), 즉 신약 개발 초기 단계에서 A라는 물질이 신약이 될지 안 될지를 AI에 물어보면 1분이면 알 수 있다. 실험을 해보지 않아도 된다. 사람이 약물을 합성하면 몇 백만 원이 필요한 반면, 3주 뒤에 결과를 알 수 있는 것은 천지 차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사람이 실험을 해볼 수 있는 후보 물질은 1년에 약 1,000개"라며 "하지만 AI는 하루 만에 100만 개도 탐색 가능하다. 1년에 1,000개 밖에 못 했다면 이중 특허성 있는 물질은 찾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1,000만 개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1억 개까지 찾기 때문에 이 중에서 특허 있는 물질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재창 박사 인터뷰 모습2
임재창 박사 인터뷰 모습2

"히츠가 개발한 AI 플랫폼이 신약 후보 물질을 어떻게 찾는지 직접 보고 싶다"는 취재진의 부탁에, 임 박사는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그는 마우스 포인터로 이쪽저쪽을 가리키면서 친절하게 시연을 시작했다.  

"이것은 테스트용으로 만든 프로젝트다. 예를 들면 어떤 분자가 있는데, 원하는 질병군에 약이 될 수 있는지가 궁금한 것이다. 이전에는 합성해 봐야 하는데 합성하지 않고 간단하게 그려서 AI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분자를 추가하고 버튼만 누르면 AI 계산을 해서 알려준다. 약물성이 무엇인지, 물에 잘 녹는지, 안 녹는지, 간에서 분해가 되는지 등을 하나씩 실험해 보지 않아도 AI에 물어보면 간단히 알 수 있다."

임 박사 설명에 따르면 만약 100개의 분자가 있다면, 어떤 것부터 합성해야 할지 정해야 한다. 100개의 분자를 AI 플랫폼에 업로드하고 예측하면 '1번' 또는 '7번' 분자가 신약 후보 물질로 유망하다고 결론이 나온다. 수많은 데이터가 누적된 AI가 최적의 결정을 하도록 우선순위를 알려준다는 개념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히츠가 이런 방법을 통해 신약 후보 물질을 찾는 시간과 비용을 압도적으로 줄였다는 점이다.

실제로 제약사와 1년간 협업하면서 6개월간 15종의 신약 후보 물질을 찾아냈다. AI 없이 했을 때 찾은 신약 후보 물질은 같은 1년의 기간 동안 단 2종이었다. 효율을 15배 높였다. AI의 힘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간(연구자)'과 AI의 역할은 각각 어떤 방식으로 나눠질까. 

임 박사는 "단순한 문제, 틀이 박힌 문제는 AI가 곧 자동화하고 풀 것"이라며 "틀이 박혀 있고 단순하다는 것은 결국 사람이 생각하는 쉬운 것이 아니다. AI한테 쉬운 것"이라며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핵심은 AI와 사람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바둑은 인간에게 정말 어렵지만 AI에게는 너무 쉽다. 바둑판처럼 규칙적으로 선이 그려진 상태고 바둑돌 위치가 정해져 있다. 흰돌, 검은돌, 바둑판이란 세 가지 환경이기 때문이다. 반면 하지만 AI는 마트에 가서 계산하는 것을 못한다. 물건의 크기, 색깔, 가격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쉽지만 AI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신약 개발에서는 어떨까. 

임 박사는 "어떤 약을 개발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은 인간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며 "예를 들면 치매의 발병 원인을 규명한다는 것과 같은, 일종의 '가치'를 부여하는 연구 말이다. 반면 단백질이 있고 약물이 결합하는데 단백질이 정해져 있다면, 단백질에 결합할 수 있는 분자 구조를 찾는 것은 AI가 훨씬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종의 틀이 정해진 '지적 반복노동'은 AI의 역할이고, 틀이 없는 영역은 인간이 감당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신약 개발에서 AI와 인간이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면서 신약 개발 기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단축될 수 있다는 것이 임 박사의 의견이다. 

임재창 박사 인터뷰 모습3
임재창 박사 인터뷰 모습3

우리나라와 글로벌 AI 선진국의 기술은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이에 대해 임 박사는 "우리나라의 기술적 역량은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며 "일례로 인공지능에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회가 ICLR(표준학습국제학회), NeurIPS(신경정보처리시스템학회), ICML(국제머신러닝학회) 이렇게 세 개다. 여기서 한국은 가장 논문을 많이 내는 국가 중 TOP으로 항상 뽑힌다. 물론 미국, 중국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우리 AI 기술도 충분히 수준이 높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뿐만이 아니다. 요즘 초거대모델이 굉장한 관심을 끌고 있다. 초거대모델은 말 그대로 딥러닝 모델의 규모를 모델의 파라미터 개수로 비교한다. 인간의 뇌로 따지면 뉴런이다. 뉴런이 많으면 많을수록 학습할 수 있는 용량이 커지기 때문에 더욱 똑똑한 뇌라고 할 수 있다. 파라미터가 클수록 더욱 좋은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용량이 커지면 데이터와 학습하는 모든 것이 어려워진다"며 "초거대모델을 자체적으로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상용서비스를 해야 한다. 그것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전 세계적으로 세 나라뿐이다. 미국, 중국, 한국이다. 그 정도 수준은 된다. 여기에 우리 IT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에 인공지능 신약 개발이란 기술과 만난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국내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을 위해 AI를 반드시 도입해야 할까. 글로벌 빅파마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무기가 될 수 있을까. 취재진이 준비한 마지막 질문에 임 박사는 이렇게 답했다. 

그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라며 "현재까지는 제약사 매출의 상당 부분이 제네릭에서 발생한다. 소위 대박이라고 하는 신약 개발 사례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약을 개발해서 글로벌로 진출하겠다는 꿈이 있다면 AI는 필수다. 약을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I 신약개발 기술은 100% 검증된 기술이 당연히 아니고 이제 오히려 태동하는 기술이다. 2000년대 초반의 인터넷처럼 말이다"라며 "그때는 인터넷으로 정확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불분명했지만 지금은 SNS로 쉽게 물건도 구매할 수 있다. 모든 것들이 당시에는 전부 미지수였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AI로 신약개발을 정확히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것을 할 수 있고 어느 정도를 할 수 있을지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다"며 "다만 제약사들은 글로벌 제약사들과 경쟁하기 위해 '그냥 열심히 할게요'라고 하면 안 된다. 잘하려면 일단 달라야 한다. 똑같이 하면 잘할 수가 없다. 남들보다 다르게 잘하려면, AI를 더욱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이 시각 추천뉴스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