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김응민 기자] 지난 2022년 7월, 우주 망원경 '제임스웹'이 촬영한 사진이 최초로 공개됐다. 제임스웹은 기존 허블 망원경을 대신해 보다 멀리 있는 우주를 관측하기 위해 발사된 차세대 우주 망원경이다. 당시 공개된 사진은 지구에서 46억 광년 떨어진 은하단으로,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우주가 펼쳐졌다.

저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어딘가, 대단한 것들이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다"라는 말처럼, 그간 베일에 싸여 있던 심(沈)우주의 세계가 기술의 발전으로 마침내 선명한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제임스웹 망원경이 미래 천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배경이다.

흥미로운 점은 제약바이오 산업에서도 앞서의 '제임스웹'과 같은 신기술이 등장해, 생명과학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신약 개발이다.

제임스웹이 촬영한 은하단 'SMACS 0723' (자료=NASA)
제임스웹이 촬영한 은하단 'SMACS 0723' (자료=NASA)

한국연구재단(NRF)이 최근 발간한 <바이오 최선진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에 대한 통찰과 전망>이라는 정책연구서에 따르면, 그간 신약 연구는 다양한 변수를 통제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생명현상을 이해하는 스케일다운(scale-down) 방식의 접근법을 통해 이뤄졌다.

즉, 다양한 변수를 통제해 비교군과 대조군이 한 가지만 다르게 실험 조건을 만들고 이에 대한 결과값을 비교·분석하는 것이 전통적인 신약 개발 방식이었다.

하지만 딥러닝(deep learning)으로 대표되는 인공지능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지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복잡한 시스템의 생명현상을 이해하고, 이를 보다 정밀하고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생명 현상과 같이 수많은 차원과 변수들로 이뤄진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그룹간 차이나 규칙성을 찾아내기 어렵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인간의 인지능력으로 무시될 만한 차이도 찾아낼 수 있다.

기존의 방식은 한 개 혹은 두 개 정도의 변수를 측정하게 되므로 생명현상의 '일부분'을 정확히 보는데 유용하지만 복잡한 생명현상의 중요한 특징들을 놓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특성은 신약 개발에서 더욱 각광 받고 있다. 기존의 약물 개발에서는 천문학적인 시간적·금전적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AI 기술은 신약 개발 각 단계에서 적용하려는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는데, 우선, 분자 구조 예측으로서 다양한 화학 정보와 구조 데이터 베이스를 기반으로 신약 후보물질의 구조를 예측할 수 있고 새로운 화학적 구조를 제시하는데 사용된다.

이러한 화학적 특성 예측으로서 분자의 화학적 특성을 예측하고 물리적·화학적 속성 데이터 베이스를 바탕으로 새로운 물질의 특성을 평가하고 약물-단백질 간의 상호 작용을 모델링해 효과적으로 후보물질을 선별하게 된다.

이후 모델링 및 분자동력학 시뮬레이션을 통해 약물 후보물질의 효과 및 안정성, 물질의 흡수, 분포, 대사, 배설 등의 특성을 미리 측정해 효과적인 후보 약물을 선정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인공지능 기반 바이오마커 분석' 영역이 있다.

유전자 정보 데이터 베이스를 바탕으로 특정 질병과 연관된 바이오마커를 예측하고 식별해 타겟 질병을 진단하거나 치료물질 개발에 활용될 수 있는 후보물질을 선별하는데 사용된다.

또한 유전체 시퀀싱 데이터를 분석해 유전자 돌연변이를 탐지하고 이를 통해 암 또는 유전적 질환과 관련된 질병 발생 메커니즘을 연구한다. 더 나아가 유전 질병 가능성이나 암 발생 가능성, 약물의 효능 등을 예측하는데 활용된다.

인공지능 기반 신약 개발 현황 (자료=한국연구재단)
인공지능 기반 신약 개발 현황 (자료=한국연구재단)

그렇다면 실제 신약 개발 과정에서 제약사들과 AI 기업 간의 협업은 얼마나 이뤄지고 있을까.

현재 인공지능 기술을 제약바이오 산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를 살펴보면, 국내에서는 AI 기반 전임상 동물연구 분석 플랫폼을 개발한 액트노바(ActNOVA)가 최근 약물의 효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아바타(AVATAR)'를 출시했다. 해당 솔루션은 한미약품 등을 포함해 다수의 국내 제약사들에게 판매됐다.

스타트업 기업인 스탠다임(Standigm)은 이미 시판 중이거나 임상단계에서 안전성이 검증된 약물을 활용해 새로운 용도를 찾아내는 '약물 재창출(drug repostioning)' 전략에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다.

다음으로 해외 사례에서는는 영국의 AI 기업 엑스사이언티아(Exscientia)가 글로벌 제약사 GSK와 파트너십을 맺고 약물 설계 및 신약 후보물질 발굴에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다. GSK는 AI를 이용해 신약 개발 기간을 현재보다 4분의 1 수준으로 줄이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다국적 제약사 얀센(Jansen)은 영국의 인공지능 회사 베네볼런트 AI(Benovolent AI)와 독점 라이선스 제휴를 맺고 저분자(small molecule) 약물 후보물질에 대한 평가를 인공지능이 수행하는 플랫폼 개발에 나섰다.

이처럼 제약사들은 인공지능 전문 기업과 파트너십을 통해 AI에 기반한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 구축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AI 신약 개발은 그동안 인간이 보지 못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게 하며 인간의 계산 능력을 초과한 바이오 데이터의 다변수 및 다차원 계산을 손쉽게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책연구서는 인공지능 신약 개발의 미래를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우선 지금까지는 생명과학 데이터 분석이 어떤 집단의 평균값을 기초로 하는 '통계학'에 의존했다면, 앞으로는 AI를 기반으로 개체 수준의 다양성을 근본으로 하는 데이터 처리로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은 단순히 오차막대(error bar)로 표기해 왔던 분포 속에 숨어 있던 중요한 사실들이 발견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집단 수준의 예측만 가능하던 것이 개별 개체들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정밀함을 획득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사활을 거는 전임상 및 임상시험의 패러다임 변화도 이뤄질 것이다.

지금까지 제약바이오 연구는 다양한 변수를 제한하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으나 인공지능을 활용한 미래에는 환경과 유전의 수많은 요소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변수들 간의 상호 작용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즉, 다양한 원인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지는 생명현상의 특성을 비로소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끝으로 미래에는 '인공지능 바이오'라는 새로운 분야가 발전해 그동안은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제약바이오 연구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를 위해 인공지능의 장점을 활용하고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제약바이오 산업에서의 새로운 과학자들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AI 분야 개발자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연구에 특화된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해, 개발된 인공지능을 생명과학의 새로운 지식 체계에 활용하는 선순환 발전을 주도하게 될 것이다.

정책연구서는 "인공지능의 등장은 복잡한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제약바이오 연구자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라며 "AI 기술 활용은 이미 바이오 및 의료 분야 전반에 필수 기술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만, 아직 연구자들이 익숙지 않고 지금까지 연구에 큰 문제가 없었기에 저변이 확대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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