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뉴스=김응민·최선재 기자] 기업 활동에 있어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책무는 '이윤 추구'다. 최근 들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나 ESG 경영과 같은 비재무적 요소들이 강조되고 있지만, 최우선시되고 근원적인 가치는 수익 창출이다.

다시 말해, 회사가 어떤 활동에 있어 '비용'을 지불한다고 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이나 가치가 수반돼야 하며 무의미한 지출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제약업계에서 'AI 신약 개발'에 대한 투자가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두에 제시했던 명제를 생각해 본다면, 제약사들이 인공지능 신약 개발에 비용을 지출하는 배경에는 그럴만한 '당위성'이 존재한다는 셈이다.

약사신문(팜뉴스)이 이번 창간 특집 기획 인터뷰로 앱티스 한태동 대표(전 동아에스티 신약연구소 상무)를 섭외한 까닭이다. 한 대표는 유한양행과 동아에스티를 거치며 다양한 신약 개발에 참여했고 한국제약바이오협회 AI신약개발전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명실상부 AI 신약 개발 전문가다.

본지는 지난 11일,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앱티스 본사에서 한 대표와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제약사들이 AI 신약 개발에 뛰어드는 이유와 국내 제약업계의 현주소,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명쾌한 어조로 분명하게 설명했다. 한 대표의 생생한 목소리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앱티스 한태동 대표
앱티스 한태동 대표

한 대표는 국내에서 'AI 신약 개발'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가장 최상단에 노출되는 인물 중 하나다. 신약 개발에서 인공지능을 주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저는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유기합성 및 의약화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국내 상위 제약사에서 신약 개발 업무를 시작했다.

2000년 유한양행에 입사할 당시에도 합성신약팀에는 'CADD(Computer-Aided Drug Design)'라는 기술을 통해 컴퓨터를 활용한 신약 개발이 이뤄지는 상황이었다. 이 기술을 사용하면 합성하고자 하는 물질이 타겟 단백질에 3차원 구조로 특정 결합(binding)하는지는 예측할 수 있었다.

하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기술이 합성하지도 않은 화합물이 약효 있을 것인지 또는 없을 것인지를 3차원 구조로 알려준 것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다만, 예측율이 떨어지고 단편적인 결과만 알려줄 뿐 더 이상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여기서 예측한 결과와 실제 결과를 학습해 새로운 화합물을 예측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고민했고, 그것은 바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인공지능으로 기존에 알려진 단백질 X-ray 구조에 다양한 화합물들을 결합하고 약효를 확인하는 작업을 반복하며 데이터가 쌓이고 학습을 통해 고도화된다. 이렇게 고도화된 인공지능은 기존 분자 구조에서 약간의 수정을 거치면 더욱 효과가 좋을 것으로 기대되는 형태를 제시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이 시기가 대략 2010년대 중후반 무렵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신약 개발에 있어 '활용 가능성'을 보였다는 의미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영역에서 효용성을 가져왔는지 설명해달라.

신약 개발은 크게 '발견(Discovery)' 단계와 '개발(Development)' 단계로 구분된다. 전자는 전임상 후보물질 도출 전까지를 의미하며, 후자는 발굴된 후보물질을 전임상 연구를 통해 동물시험에서 유효성과 안전성을 확인하고, 이후 사람에게 진행하는 임상시험 과정을 뜻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인공지능이 집중적으로 발전한 영역은 주로 Discovery 단계다. 초기에는 약물 재창출(Drug repositioning)이 주된 관심사였다. 기존에 승인받은 신약들을 AI통해 새로운 적응증을 찾는 연구가 먼저 진행되었다. 그 이후는 이미 받은 약물들은 사람에게서 흡수와 안전성 부분에서 이미 검증이 되었기 때문에 다른 적응증으로의 약효만 예측하면 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물질을 찾는 부분에서는 조금 다른 얘기다. 신약 개발의 전주기를 예측하고 이를 토대로 인공지능은 새로운 물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제가 생각하는 인공지능 수준은 Hit / Lead 물질을 발굴하는 데에는 많은 발전을 이뤘으나 아직까지 오프타겟(off-target)에 의한 독성 예측, 동물에서의 흡수율, 일반약리 안전성 예측 등은 정확도가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과거 새로운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5000개가 넘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야 했는데, 이제는 AI를 통해 초기 단계의 도움을 받아 1000개 이하의 물질 아니면 어쩌면 100개 이하의 물질만 만들어 후보물질을 도출하는 시대가 조만간 도래할 것으로 추측한다. 이렇게 AI 기술은 전임상 후보물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다주고 있다.

국내 인공지능 활용 신약개발은 2010년대 중반부터 일부 제약사들을 중심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2010년대 후반에 활성화됐다. 이후 2020~22년 사이에 많은 AI 신약 개발 기업들이 탄생해 현재 국내에도 약 50개 정도의 AI 신약 개발 회사가 있는 상황이다.

현재 해외 제약사들은 신약개발 전주기에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신약개발을 하고 있지만, 국내 제약사들은 초기 개발 단계에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하면서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 지를 알아가고 있는 단계라 생각된다.

본격적인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개발(Development) 단계에서의 AI 기술 발전은 상대적으로 뒤처진 것 같은데, Development 영역에서는 AI가 활용될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앞서의 Discovery 단계에서는 AI 기술이 '물질 스크리닝'에 도움을 줬다면, Development에서는 임상시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임상시험은 앞서 전임상 후보물질 탐색 단계와는 달리 임상시험 규모나 방법, 기간 등 구체적인 프로토콜이 정해져 있다. 이 단계에서 드라마틱한 시간 단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다만, 인공지능이 현재 개발하고 있는 질환에 대한 ▲최적의 바이오마커를 찾아주거나 ▲보다 효율적인 임상시험 디자인을 제시하거나 ▲적합한 임상 환자군 설정 등을 도와줄 수 있다면 실제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데 있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임상시험의 경우, 통계적으로는 약효가 있는데 p-value(대조군과 실험군 간에 도출된 결과가 우연히 발생했을 가능성)가 맞춰지지 않아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환자 선정에서 1~2명이 잘못돼 중단되는 사례도 발생한다.

임상시험 성공률을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활용될 여지는 충분하다. 국내 AI 신약 개발이 포커스를 맞춰야 하는 부분은 바로 Development 단계다.

만약 Development 단계에서 AI 신약 개발이 고도화된다면 궁극적으로는 임상시험 기간을 단축하거나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앱티스 한태동 대표
앱티스 한태동 대표

국내 제약사들은 히트나 리드 물질을 탐색하는 영역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인데, 해외도 이와 비슷한 수준인지 궁금하다. 만약 글로벌 제약사들과 격차가 있다면 그 이유에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흔히 얘기하는 '체급' 차이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글로벌 제약사들은 탐색(Discovery) 단계는 물론이고 이미 개발(Development) 단계에서도 AI 신약 개발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탐색 영역만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도 결코 뒤처지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개발 영역은 많이 부족하다. 글로벌 사례와 비교하면 국내 수준이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 기술이 신약 Development 영역에서 제대로 활용되려면, 풍부한 환자 데이터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나름의 노력은 하고 있지만, 아직 공공 데이터의 활용도는 외국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환자에 대한 약물 처방이나 환자 정보와 같은 내용들이 정형화된 포맷(format)이 없다. 여기저기에서 데이터를 모은다고 하더라도 너무나 천차만별이라 하나로 취합하기 쉽지 않다.

즉, 현재는 데이터 표준화(Data standarization)를 해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기본적인 틀을 갖춰 놔야 나중에 5년 후, 혹은 10년 후에라도 모아 둔 데이터를 활용해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표준화 작업은 어느 회사나 단체가 나서서 진행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 이러한 작업들이 이루어져야 이 분야에서도 해외제약사와의 격차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국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과 관심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결국 이러한 부분들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움직여 줘야 한다. 여태까지 준비가 미흡한 것은 괜찮다. 아직까지는 AI 신약 개발이라는 기술 자체가 이제 막 발전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손을 놓아 버린다면, 나중에 정말 액셀을 밟아야 하는 단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격차는 훨씬 더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질 것이며 기술을 선점한 기업들은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빠르게' 신약을 개발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서 환자 및 의료 데이터를 동일한 포맷으로 일원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이유다.

이러한 노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민관 협력의 연합학습 기반 신약 개발 가속화 사업인 'K-MELODY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다.

K-멜로디는 제약사 등 개별 기관이 보유한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켜 결과물을 중앙 플랫폼에 모으는 방식이다. 데이터 유출이 없어 제약사들의 개별 데이터는 안전하게 보호하고 신약 개발 관련 다기관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전폭적이고 폭넓은 지원과 대책이 필요하다. 글로벌이 우리보다 앞서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 IT 인프라가 우수한 점도 긍정적이다.

지금부터 준비해서 대비한다면, 향후 AI 신약 개발 분야에서 선두로 치고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그간 AI 신약 개발은 많은 발전을 거듭했지만 앞으로 갈 길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체감할 수 있을 만한 수준으로 신약 개발 영역에서 AI 기술이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1980~90년대만 하더라도 단백질 구조를 규명하려면 직접 X-ray로 촬영해서 결과물을 직접 확인해야 했다. 단백질에 특정 물질을 결합하려면 실제 단백질 구조가 존재해야만 시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AI 기술이 접목되면서 이러한 과정이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예전에는 주로 저분자 화합물에 대한 예측이 주류를 이뤘으나 이제는 항체, RNA 등 바이오의약품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불과 2020년까지도 기술력이 부족해 진행하지 못했던 영역이었다.

동아에스티는 지난 2022년에 인공지능 회사(심플렉스)와 정부과제를 통해 새로운 인공지능 활용 신약개발을 진행했었다.

유한양행의 폐암 신약 '렉라자'를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연세대 조병철 교수와 협업했는데, 단순히 타겟 물질 탐색을 넘어 이제는 폐암환자의 세포주를 활용하여 치료에 가장 적합한 타겟을 발굴하고 이를 실제 후보물질을 도출하는 프로젝트였다.

이처럼 기술 발전의 속도는 매우 빠르며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인체에 대한 모든 부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신약개발에 있어서 인공지능의 한계는 당연히 있다.

그러나 우리가 체내 시스템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유전체와 단백질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분석할 수 있다면, AI를 통한 신약 개발은 더욱 더 활발히 진행될 것이며 향후에는 우리가 기대하는 바 보다 휠씬 더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한편, 한태동 대표와의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취재진에게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았다. 기나긴 대담을 통해 AI와 신약 개발에 한 대표가 얼마나 많은 애정을 쏟고 있는지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나눴던 대화를 모두 담고 싶었으나 지면의 한계로 핵심만 추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한 대표의 열정과 목소리가 충분히 전해질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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